2012년 1월 16일 월요일

진중권에 대한 오해들

요즘에'도' 진중권을 두고 사람들이 말이 많은데 ..
사람에 대한 호오의 감정이야 내가 뭐라 할 바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까고 하는 게 사실에는 근거해 있어야 의미가 있지 싶다.
옹호하는 쪽에서도, 까는 쪽에서도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야 정작 싸울 때 어이없이 무너지지 않을테니 말이다.
사실 본격적으로 키워질 하기 전에 십분 정도만 투자해서 검색을 하고 시작하면 별 문제가 없을텐데 말이다.

진중권을 깔 때 흔히 쓰는 말이 몇 가지 있는데 대충 세 가지만 추리면 이정도일듯
1. 진중권 너도 촛불시위 때 광우병 괴담에 넘어가 빠질 선동하지 않았냐.
2. 키워질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해라.
3. 큰 흐름을 봐라. (논리만 있고 감성이 없다.)

1. 진중권은 촛불 시위 때 광우병 괴담을 선동질했다.
- 일단 나꼼수와의 비교에서 과거를 들먹거리는 건 나꼼수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김어준 대 진중권의 배틀이라고 하면 진중권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기본적으로 진의 우위를 점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2007년 심빠, 2005년 황빠의 난 때 양자의 포지션과 결과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물론, 진중권의 전력은 현재 꼼수를 둘러싼 논쟁과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이 없고, 마찬가지로 김어준의 전력도 현재 꼼수를 둘러싼 논쟁과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이 없다. 다만 사람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국익에 기반한 우리편 감싸기라는 김어준의 빠질 행태와 네티즌의 뭇매와 관계없이 우리편이든 아니든 깐다는 진중권의 자세는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어느 정도 시사점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중권이 촛불 집회 때 칼라티비를 들고 시위 현장을 누빈 전력을 들추는 것은 아마 '너는 뭐가 그리 잘났기에'라는 투정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여간 '진중권이 광우병 괴담을 선동했다.'는 주장은 굉장히 광범위하게 퍼져있는데, 이를테면 (황구라 사태로 대중적으로 존재가 알려진) 브릭 같은 곳이나, 일반 포털 및 대형 커뮤니티, 개인 블로그 등등에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있다. 아마도 촛불집회 = 광우병 괴담 = 진중권 이런 식의 등치가 성립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진중권은 광우병 괴담을 선동질한 적이 없다. 진중권의 당시 입장은 다음과 같다.
[광우병에 대한 과장된 담론이 떠도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이상, 지금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논리적으로 안전하게 주장할 수 있는 선을 제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진중권은 광우병의 위험성이 아니라, 정부의 사전 예방 절차에 대한 미흡함과 책임을 주로 거론했고, 광우병의 위험성은 과장되어 있으니 그걸 주장해선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황빠, 심빠와 비견될만한 광우병 선동질로 보기에는 좀 거리가 있어보인다.


2. 입진보질 말고 행동을 해라.
입진보 운운 하면서 행동을 촉구하는 사람들, 진중권 비판자 중에서도 좀 급이 낮은 사람들이다. (급이 좀 되는 사람들은 '진중권이 싫다. 그러나 진중권은 자기 나름대로 할만큼 일을 해왔다'는 입장이다.) 글쟁이 진중권이 글을 쓰는 게 행동이 아니면 뭘까? 대체 글쟁이 중에 진중권만큼 글로 많은 일을 한 사람은 또 누군가? 입진보 운운하는 사람들도 이런 반격을 받으면 할 말이 옹색해질 정도의 양심은 있는 모양이다. 최초의 반격을 받은 후에는 다양한 버전으로 주장을 바꾼다.

2-1 성과가 뭐냐? = 일을 많이 했다고 하고 뭔가 열심히 한 것까지는 인정하는데 아무 성과 없으니 무시하겠다. (우리 옵빠는 600백만 다운로더가 있고 집회에도 나가시고, 선거 결과까지 움직이는 열혈 활동했음)
2-2 지금 안하고 있지 않느냐. 비겁하게 정권 탄압 피해서 외국 나가서 비행기나 타고 있지 않느냐. (우리 옵빠는 신변의 위협을 받아가며 열심히 이빨까고 있는데 정씨옵빠는 구속까지 됐고 .. )

2-1에 대해서는 ... 성과주의의 폐해를 경계합시다. 성과주의가 우리 사회를 말아먹고 있어요...는농담이고..
기본적으로, 원래의 대답과 마찬가지로 진중권은 평론과 글쓰기가 일이다. 진중권의 저술과 그간의 활동으로 의식이 깨인 사람들도 매우 많은데, 이렇게 의식이 깨인 사람들은 상식에 어긋나도 국민 정서에 맞으면 OK라거나, 니 말이 맞는데 그래도 난 이럴래 정도의 언어구사밖에 안되는 사람들보다 훨씬 건강하다. 사회적으로도 유익하고.
그리고 1번 촛불 집회의 경우, 진중권 같은 이가 의제 설정을 하고 한계를 두고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모든 참여 세력이 광우병 괴담에 골몰했다면 (실제로 그런 유사한 형국이 되었고) 결국 그 속의 유의미한 측면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헛발질로 치부되고 말았을 것이다. 나중에나마 발뺌하는 형식으로 (좀 늦었다) 진중권식의 의제 설정이 확산되어 검역 주권쪽으로 맞춰졌다. 이것이 진중권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려울지라도, 거의 초기부터 사건의 핵심을 파악하고 합리적 의제를 제시함으로써 다른 이들에 의해 제대로된 의자가 설정되도록 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평론가, 논객의 역할은 그 정도면 차고도 넘친다.
2-2 이건 무식해서 그런 건지 악의적인 외면인지 모르겠는데, 한 가지만 묻자.
진중권이 활동할 때 김어준은 뭐하고 있었나? 그리고 당신은 무슨 뭘 하고 있었나?
그리고 지금 진중권이 활동을 안한다는 근거는 또 뭔가? 팟캐스트는 활동이고 글쓰기는 활동이 아닌가? (아.. 정봉주 옵빠처럼 구속이 되야만 인정? 벌금형으로 퉁치면 안되겠니?)

3. 진중권은 논리만 있고 감성이 없기 때문에 영양가가 없다.
다시 말해서 나꼼수는 논리는 부족하지만 감성이 있어서 진중권 따위보다 사회에 더욱 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일 것이다. 꼬우면 니가 나꼼수 같은 거 만들던가 .. 라거나 정봉주의 칼라티비 망했네 묻어가네 얘기도 이런 맥락이다.

이 문제에는 (다른 많은 문제들이 그렇듯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진중권은 이미 답을 했다. 사자와 낙타 얘기로.
논리가 대중적 감정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게 특수하고 불행한 일인지 원래 그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양자가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논리를 버려야 하는가? 혹은 논리를 버리지 않는 자를 욕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오히려 대중적 감정이 (예의 광우병 사태에서 보듯이) 제대로 분출되기 위해서는 조금 아프더라도 논리가 그들을 엇나가지 않게 찔러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지식인들이 대중의 감정에 영합해서는 대형 사고만 칠 뿐이다.

3-1 얼핏 단순한 것 같지만 이 경향에는 그 배경에 아주 깊이 논의해야 할 문제가 숨어 있다.
... '나는' 또는 '지금은' 괜찮아라는 태도라고 해야 할까? 말하자면 '영양가'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다.
'너의 얘기는 일반적, 보편적으로 맞지만, 일반적으로는 틀리더라도 '지금은' 이걸 해야돼. 또는 보편적인 일은 아니지만 '나는(우리는)' 이걸 해도 돼. 라는 것.
예컨대 나꼼수는 탄압을 받고 있으니까, MB를 까고 있으니까, MB승리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니까. 지금은 나꼼수가 거짓말을 하건 너절리즘을 하건 허용되고 오히려 장려된다라는 것. 왜냐. 영양가가 있으니까.

영양가라는 건 아마 대중적 영향력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표로 연결되어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는 힘이라는 거겠지. 결국 다시 말하면, 논리적으로 틀린 얘기라도 표심으로 연결될 수 있고 정치적 승리를 가져올 수단이므로 비판해선 안된다라는 것.

안타깝지만 '이번만은' 다른 모든 걸 제껴두고' 같은 언사는 실제로는 별로 영양가가 없다. 가장 비근한 예로 사표론을 보면 된다. [너희 신념은 인정하지만 이번만은 나를 찍어.] 이성보단 감성이라는 논리 구조와 같다. 그런데 이게 정말 도움이 될까?

개인적으로 3번의 대선과 4번의 총선을 치러봤는데, '이번만은!' 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긴 어느 대선이 안중요하고 어느 총선은 대충 치러도 될까. 그래서 이번만은 이겨야 하니 편법이라도 쓰자. 이기고 나면 다시는 안쓰겠다? 어불성설이다. 20년 넘는 야당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망하면 안될 것 같아서, 얘들은 좀 나을 것 같아서 찍어준 결과가 작금의 상황이다. 상식의 실종이요, 진보의 몰락이요, 이명박 당선이다. 결국 '이번엔 이겨야 하니까 편법이고 비논리고 눈감자'라고 한 결과는 장기적인 진보 / 개혁 세력의 몰락으로 나타났다. '이번만은 내가 틀리더라도 따라줘. 안따라주면 반동' 따위 어차피 사람들을 많이 움직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당장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수준의 말이 자기들끼리 거침없이 왔다갔다 하니까 (얼마나 통쾌한 일이냐!) 그게 세상의 전부인줄 알고 방방 뜨게되는 경우가 있는데,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자신과 의견이 같은 사람들의 집단이 의외로 적다는 거다. 최소한 내 기대만큼 크지는 않다.

실제로 현실에서도 영양가가 있으려면 감동도 받지 않았고, '이번만은'이라는 절박함도 없는 - 당신들 세계 바깥의 사람들에 대한 설득이 필요할 것인데, 이 경우 상식에 눈감고 이성에 눈감는 것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개의 경우 물론 그 바깥 사람들이 사람들이 이성의 잣대를 들이대면 우리편들이 똘똘 뭉쳐서 감성으로 물어 뜯으며 대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영양가는 쭉 빠지는 거다. 결국 그 바깥의 사람들을 공략하는 데는 감성이 방해가 되고 이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감성적인 나꼼빠들보다 이성적인 진중권이 훨씬 영양가가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