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0일 화요일

[이주노동자 후원회 성명]수원 살해사건을 빌미로 한 이주민 혐오정서 조장을 비판한

수원 살해사건을 빌미로 한 이주민 혐오정서 조장을 비판한다!

수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해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에 대한 근거없는 혐오 발언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에 난무하고 있어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의 피의자가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네티즌들이 노골적인 적대적 정서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모든 조선족을 한국땅에서 추방해야 한다”거나 “조선족들은 다 미쳤다”, “싸우면 살인으로 이어진다” 등의 근거없는 반감과 일방적 주장을 하면서 이주민 전체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우리는 이번과 같은 중범죄를 강력히 규탄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이주민 집단 전체를 범죄자처럼 몰고 가거나 혐오와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인종차별일 뿐이라는 것을 또한 강력히 주장하고자 한다.

첫째, 이주민들의 범죄율은 내국인보다 낮다. 2009년 10월 19일 대검찰청의 국정감사자료에 의하면 2008년 한국인 범죄 건수는 2,733,285건으로서 인구대비 5.62%이고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외국인범죄 건수는 20,623명으로 외국인숫자 대비 1.78%에 불과했다. 그마저 경범죄가 많다. 자기 나라도 아닌 낯선 남의 나라에 가서 일하면서 돈 버는게 바쁜 이주민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둘째, 특정 이주민 집단을 범죄성이 강하다고 매도하는 것 역시 일반화의 오류거나 근거없는 비방일 뿐이다. 한국사람 중에 예컨대 경상도 사람이 중범죄를 저질렀다고 경상도 사람이 문제라거나 추방하자는 주장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셋째, 이주민을 추방하자고 주장하거나 이주민 집단을 혐오하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세계화된 시대에 전혀 공존에 도움되지 않는다. 예컨대 최근에 미국에서 벌어진 한인계 이민자의 총기난사 사건이나 과거의 유사 사건에 있어서 미국인들이 한인들이 잔인하다거나 이들을 강력하게 통제하자거나 추방하자고 했으면 어땠겠는가? 전혀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고 집단 간의 갈등만 부추겼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사회 인구와 노동력 구조 상 이민자가 더 필요한 상황이고 이를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더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안을 찾을 문제이지 이런 식으로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된다.

특정한 사건을 놓고 집단 전체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또 다른 사회적 폭력이 된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하여 이주민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는 이들이다. 인종차별과 혐오, 반감이 확산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이들의 사회적 위치가 더욱 위축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피의자와 그의 출신이 되는 집단은 당연히 구분해서 보는 것이 이성적인 접근법이다. 무책임한 말의 칼을 휘두르기 전에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자세가 요구된다.

2012. 4. 9
이주노동자의 벗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2012년 4월 5일 목요일

김용민이 미군 범죄에 분노해서 욕을 했다고?

김용민 옹호자들이 관타나모에서 미군의 범죄 사실을 들어, 부시와 라이스가 이라크 전쟁의 주역이었음을 들어 그들을 욕한 것은 죄가 아니라는 식의 변명을 하는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관계가 틀렸다.

본론과는 관계 없지만 혹시나 혼선의 여지가 있을까 해서 먼저 밝혀둘 것이 있다. 부시와 라이스가 정말 살해를 당해야 할 정도로 극악하다면 그것은 그들이 김용민이 말로 했던 그런 행동을 실제로 행동에 옮겼기 때문이다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김용민의 경우는 '말 뿐'이었지만, 그 극악성에 비추어 볼 때 발언 자체는 입이 백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글의 주제는 누군가를 강간살해하자는 것이 얼마나 극악한 발언인지를 밝히는 게 아니다. 단지 '관타나모에 대한 분노'설이 전혀 김용민의 변명이 될 수 없음을 밝히는 것이다.

** 김용민은 모든 걸 안고 가겠다고 사과했다. 남의 진정성 따위 관심법 없이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일단 김용민은 사과를 한 것으로 치자. 어차피 김용민 자신이 관타나모를 들먹인 적도 없다. 나머지 이야기는 김용민 본인이 아니라, 김용민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얘기다. **

** 참고로 어느 글에선가 보았는데, 관타나모는 2005년에 알려졌으므로 2004년 방송의 소재가 아닐 것이고, 만약 '분노'의 소재가 있었다면 그것은 아부그라이브의 학대 사건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건 소소한 사실 오류이고, 그렇다면 관타나모에 대한 분노를 아부그라이브에 대한 분노로 수정하면 될 것이다. **

김용민의 발언의 개요는 이렇다. 우리나라가 테러를 당할 지도 모르는데, 국내에 사전 테러를 몇 번 한다던지, 혹은 한국에서 먼저 미국 - 부시와 럼스펠드, 라이스에게 테러를 함으로써 우리나라에 가해질 테러를 막자는 것이다. (미군의 반인간적 범죄에 대한 분노로 보기에는 뭔가 스토리가 이상하다.)

김용민의 발언이 있었던 2004년 겨울은 부시의 충실한 친구 한국이 이라크 파병 주둔을 연장해서 2년이 되어가던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 겨울 어느날, 이라크 민간 지역에 폭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http://j.mp/Hoc5ql


그때 죽은 아이 앞에서 오열하는 부모와 부모의 시체 앞에 멍하니 앉아있던 아이의 사진을 보았다. 나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언젠가 저 아이가 커서 김포공항에 폭탄을 던진다면, 과연 우리는 그를 잔혹한 살인마라고 단죄할 수 있을까?"

파병의 옳고그름을 떠나 한국은 이라크 점령군의 일원이었고, 팔루자, 아부그라이브, 관타나모에서 학살과 학대가 있었다. 이라크인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일종의 위기감을 느꼈었다. 몇몇 신문에서도 보도되었던 것 같은데, 말하자면 미국, 한국을 비롯한 연합군에 의해 가족을 잃은 그들이 혹시 분노의 창끝을 우리에게 돌리지 않을까하는 우려였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더이상 조용하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식의 신문 카피를 본 기억이 난다.

내용과 시기, 이야기의 전후 맥락을 볼 때 김용민의 발언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김용민의 대책은 그 내용을 떠나서 어떤 면에서는 옳았다. 우리가 그들의 분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만일 그들의 분노가 우리에게 향한다면, 우리가 평화적 수단으로 오해를 풀고 그 분노를 사그러뜨릴 방법도 없었다. 그들이 처참한 피해를 입었고, 우리가 가해자 중의 하나인 것은 오해가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러 방지 대책'이라고 내놓은 김용민의 해법은 더 책임있어보이는 미국의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우리는 가해자가 아닌 척 하는 것이었다. (김용민을 포함하여 한국인이 보기에) 이라크인의 분노가 엄청났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이 관심을 돌리기 위한 선제적 예방 테러는 부시, 럼스펠드, 라이스에 대한 강간살해 정도로 강렬해야 했을 것이다.
.. 그 발언이 물론 현실성이나 그런 것은 개의치 않은 농담이었을 거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점은 설명했듯이 당시 김용민의 발언이 '관타나모에서 학대를 자행하는 미군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관타나모같은 학대를 도와준 한국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 책임회피의 희생양으로 옛 동료를 강간살해하자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동료과 손잡고 누구에게 잘못을 했다. 그가 나에게 화를 낸다. 그 화를 피하고자, 동료였던 이를 먼저 강간살해한다. 그리고 말한다. 헤헷 난 좀 봐줘. ...
이것이 관타나모를 끌어들여 김용민을 변명할 수 없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탁현민, 김어준 류의 '김용민 반미투사설'은 궤변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궤변이 아니라 사기라고 의심하고 있다.)

참고로, 미군에 대한 분노를 북돋고 싶다면 관타나모나 아부그라이브에서의 학대 장면 쯤은 우습다. (우습게도 김용민 옹호를 위해 인터넷에 퍼올려진 사진들은 합성이라고 한다.) 그보다는 이라크 민간인 공습으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라.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그 참상에 분노하지않을 수 없다. 문제는 한국이, 그리고 김용민이 (또한 한국인인 우리가) 그 분노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라는 점이다.

그 사태에 대해 정말 분노했다면, 가해자의 일원으로서 반성이 선행되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그 프로는 시사'개그'였으니 진지한 반성을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어쨋든 그 프로는 '시사'개그였는데, 이라크인의 테러를 걱정하면서, 그들이 왜 분노했는지도 전혀 생각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시사평론가 김용민의 당시 발언은 한심한 수준이다.
차라리 "파병을 결정한 자를 포박하여" 이라크인에게 화해의 선물로 던져주자 이럴 수도 있지 않았는가. 침략에 대한 반성이 없고, 피해받은 이에 대한 연민이 없고, 하다못해 전우에 대한 동료의식마저 없는 그런 수준의 발언. .... 더 나가면 글의 목적이 삼천포로 빠질 것 같으니 그만두자.

결론이자 목적을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김용민은 미국의 만행에 분노하여 부시와 라이스를 강간살해하자고 한 것이 아니다.
김용민은 미국과 한국의 침략에 피해받은 이라크인이 혹시 한국에 그 잘못을 따져물을까봐 이를 회피하고자 부시와 라이스를 강간살해하여 희생양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민이 사퇴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에 대한 의견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결정하지 못했다기보다 (이것은 또 긴 얘기가 필요할 듯 한데) 요즘은 흔히 어떤 사람이 의견을 개진할 때 '모든 것을 공평하게 재보고 난 후에 내린 보편타당한 결론'일 것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인식 수준을 가진 김용민이 무슨 큰싸움을 하기 위해 큰 권력을 쥐어야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외의 다른 몇가지 이유로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 '누구나 납득할만한 보편타당'의 경지까지 설명할 수 없기에 '결정하지 못했다.'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정치와 관련된 어떤 주제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이런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간혹 자신의 설명이 보편타당하다고 철썩같이 믿는 철부지들이 있기는 하다.)

어쨋든 그런 사람들의 존재 자체는 엄연한 현실인 것이고, 그런 수준의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기에 적합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국회의원 하라고 지지할 권리가 있다면, 하지 말라고 비판할 권리도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