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7일 토요일

진정성 ...

말 자체가 나쁜 의미는 아닐진대 정말 보기 싫은 말이 되었다.

벌써 한 7-8년 되었으니 지금 쓰긴 새삼스럽지만, 요즘에 다시 진정성 찾는 사람들이 있어서.
게다가 요즘은 '진정성'이라는 게 공식 용어가 되어버렸다. 의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부 당국은 대북 관계에 진정성을 보여라라든지 박근혜 비대위장에게 쇄신의 진정성을 느꼈다느니 하는 식으로 '진정성' 저작권자들의 반대편에서도 쓰고 있으니까.
- 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진정성'에 관한 한 둘은 거의 차이가 없으니까.

유시민느님의 말을 들어보자.
서울대학교 강연 中.
'진정성은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타당한 것인가 타당치 못한 것인가 이것뿐이다.'
참으로 훌륭한 말씀이다. 역시 똑똑하긴 똑똑하구나 .... 라기보다 이게 당연한 거지.

참고로 진정성은 표준 국어 단어가 아니다.
아마 다음 두 단어 중 하나에 성질을 의미하는 性 자를 붙여서 만들어진 단어 같다.
진정02(眞正) 부사거짓이 없이 참으로. ≒진성03(眞成)ㆍ진정히.
진정05(眞情) 명사「1」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 「2」참된 사정.
단어적 의미로 보자면 '참된 사정'에 가까울 것 같긴 한데, 사실 '마음의 상태'라는 위 언명과 결부시켜 보면 '말하거나 행하는 자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에 대한 참된 사정'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사실은 '참된'이라기보다는 진심 혹은 본심, 내지는 속사정 정도의 의미가 어울릴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의미는 좋은 편(?)에 속한다. 성선설을 믿는 한 '진심'은 좋은 것이니까. 특히 정치적이나 사회적인 문제에서 '진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진정성 현상이 나타난 게 사실 노무현 대선 시기부터이기 때문에 진정성 얘기를 하자면 친노 지지세력(세칭 노빠)들이 거론될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분이 지금은 좀 쇠락한 정치인 유시민인데.
예컨데 유시민 지지자들은 '유시민에게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라고 하고, 노빠 출신 중 비교적 유시민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유시민의 행적에서 진정성을 볼 수 없다.'라고 한다. 간단히 검색을 해보니, 문성근의 진정성을 배워라 라는 충고, 최근 쇠락은 진정성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충고 등이 있다. 아마 최근 통합 과정에서 독자적(이라기보다 정략적) 모습을 많이 보여서 비판적 의견이 많이 생겼나보다.
요컨대 '너 개인의 입지 말고 (문성근씨처럼) 우리편으로서의 우직한 충성도를 증명해라.' 라는 것.

철지난 얘기지만, 잊을 수 없는 얘기라 언급하자면, "파병은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노무현의 진정성을 고려할 때 그 안에 복잡한 국제 정세와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지지해야 한다"라는 식의 논리가 있었다.
간단히 쓰면 이렇다. 우리편이니까 반대하는 일도 지지하자.

'진정성'이 실제로 사용될 때의 의미는 '우리편'인지 '적'인지를 구분할 때 쓰이는 것이다.
'진정성'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진영논리의 핵심 키워드인 셈이다.
진영논리의 확산과 함께 - 이것은 '빠'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 사건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우리편인가?가 판단의 기준이 되면서 소위 개혁적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논제가 삼천포로 빠지게 되었다.
파병이 옳은가 그른가가 논점이 되지 않고, '우리 정권에게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가 논점로
(사실 이 부분에서 앞서 서울대 강연을 하셨던 유시민씨도 자유롭지 않다.)
경쟁했었던 (과거형임) 후보에게 2억을 준 사실이 적절한가 아닌가가 논제가 되지 않고 '우리편인가 아닌가?'가 논점으로 변한다.

이러한 현상이 횡행하다보니 이제는 '진정성이 있는가 없는가'가 다른 가치판단에 우선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나꼼수의 욕에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 욕은 비판할 수 없다.' 라는 식이다.
이 정도라면 애교지만, '우리편의 치부를 먼저 공격하는 입진보는 한나라당의 꼭두각시'라는 식까지 나가게 되면 해악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입진보가 논리적으로 맞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는 심경고백까지 나오고 보면, 이 진정성이라는 게 정신건강에 얼마나 좋지 않은지 알 수 있다.
방금 본 트윗에 이런 게 있다. "정의는 양심이고 상식은 논리입니다. ..... 상식이 바로 선다고 정의가 승리하는건 아니지 않는지요." ... 답이 없다.

정말 문제는 이들이 비교적 사회에서 정의감을 가지고 정치에 관심이 많으며 한 똑똑한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국개론을 정말 싫어하는데, 이런 현상을 보면 꼭 부정할 것만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유시민씨 말대로 진정성의 원래 의미는 마음의 상태일 뿐이다. 나꼼수의 진정성이 크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진정성이 크다는 건 열정적이라는 것이고, 사람이라는 동물은 열정적인 대상에 쉽게 동화되고 자기의 열정을 끄집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꼭 '옳으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몹시 높다. 그래서 항상 반성하고 경계해야 하는 법이다.

이들은 아마 열정적으로 진보적(?), 상식적, 진짜보수적(?) 개혁을 원하고 있을텐데, 열정의 보람은 크게 찾기 어려울 듯 하다. 최대치는 아마 한나라당을 이기는 그 한순간의 만족감으로 끝날 것 같다. - 이것도 내가 보기에는 사실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진보진영이 진영논리에 완전히 먹혀버린 직후이므로 그 여파로 가능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

고전 한토막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한 사내는, 튼튼한 천리마(千里馬)가 이끄는 마차에 몸을 싣고, 날 듯 한 기세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도중 주막에서 잠간 쉬고 있는데, 인근의 한 백성이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으니, ‘나는 지금 저 멀리 초(楚)나라로 가는 길이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백성은 감작 놀라 ‘손님 큰일 났군요. 초나라로 가려면 이 길 반대편으로 가야하는데, 지금이라도 마차를 돌려 가셔야 합니다.’하고 이러주었습니다.

이에 나그네는 거만을 떨면서 장담하기를 ‘걱정할 것 없소이다. 내 마차는 튼튼하고 말은 천리마니 미리 겁낼 것 없을 것이요’하고 일어서려는데, 그 백성은 ‘아니지요. 아무리 튼튼한 마차를 천리마가 끈다고 한들, 초나라로 가는 손님이 반대 방향으로 가면, 길은 점점 멀어질 테인데, 괜찮겠습니까.’하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그네는 ‘말씀은 고맙지만, 나에게는 부모가 마련해준 여비도 든든하고, 시간도 넉넉하니 염려 없습니다, 그럼!!!’하고 역시 반대방향으로 마차를 달려서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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