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7일 월요일

어디에 반론으로 쓴 글..


자본주의 공산주의 신자유주의 이론을 모두 포괄하는 무슨 주의가 있다면 인간모두잘살자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분명 자본주의도 신자유주의도 이렇게 해야 사회 전체의 효용이 극대화된다는 이론인 것으로 알아요. 모든 사람들은 ‘사람이 모두 잘살자고 하는 일’에 대한 이의를 달지 않습니다.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것은 그저 방법론일 뿐이죠. 즉, 어떻게 하면 잘 살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을 정교화하는 논쟁은 있었을 지언정, 사람들이 잘살자는 주의가 틀렸다. 잘못되었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본글에 언급된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것과 유사하다고 봅니다. ‘여성이 핍박받고 있으므로 여권을 신장해야 한다.’는 사실과 당위가 여성주의 이론과 등치될 수 없거든요. 이런 면에서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에 여성주의가 강자다’라는 건 궤변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공부하신 적이 없으시다니 (저도 없습니다.) 감안은 해야겠지만, 자기가 모르는 분야를 언급할 때는 좀더 신중한 논리를 전개하셔야 할 듯 합니다.



저도 역시 여성주의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대충 줏어들은 바로는, 여성주의는 그냥 독립적인 가치입니다. 아주 과거에는 진보라거나, 사회주의, 인간 해방과 등치 또는 선결 조건 정도로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 여성해방이 되지 않고서는 인간 해방이 올 수 없다. 진보주의자는 여성주의자다. 라는 식으로 – 지금은 대체로 독립적 가치로 생각합니다.
예컨대, 환경주의자 입장에서는 사회주의자나 자본주의자나 환경에 대한 착취를 확대하여 그 생산물을 어떻게 배분할까 골몰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여성주의자 입장에서 술먹고 부인 패는 진보정당원이나 화끈한 밤문화를 즐기는 수구 국회의원, 여성들에게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마초성을 과시하는 진보 평론가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나는 주성영보다 충분히 여성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 위에 약자인 보통의 여성들과 강자인 여성주의자들을 분리하셨는데 이게 노노갈등의 전형적인 논리, 노동자는 약자고 노동자를 위한다는 명분은 훌륭한데, 노조는 힘이 세고 귀족이라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여성은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하지만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은 있어서는 안된다?? 너희의 대의는 다 이해하니까, 추진하지 말라는 감언이설이죠.


또 수구건 우파건 좌파건 어떤 집단에나 극단적 분파가 있기 마련이고, 당연히 여성주의자의 일부가 꼴보기 싫은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이를테면 ‘적을 만들기 때문에 여성주의에도 해악적인’ 일이라면서 제법 위해주는 척 비판인지 비난인지를 하는 사람들이 있죠. 이 점에 관해서 답하는 여성주의 글이 있는데, 링크를 찾지 못하겠군요. 개요는 이렇습니다. ‘불편하고 거슬리게 해라, 더러워서라도 여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해라.’ 그 배경과 논지 전개를 보면 저는 일리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이 여성주의의 지반을 해친다고 애정어린 비판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럴 권리까지 막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이런 비판이 흔히 있는 애정어린 다른 비판들과 비교하면 좀 느낌이 다릅니다. 이를테면 사노맹은 너무 극좌라는 노선 비판이라거나 사회당의 기본소득은 비현실적이라 국민의 호응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 등과 비교할 때 얼마나 하나의 가치로서 대접받고 있는지를 보면 좀 회의적입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쪽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들은 강자가 아닙니다. 초딩 중딩한테까지 가루가 되도록 까이거든요. 몹시 여성비하적인 표현과 함께요..


나꼼수 문제로 잠깐 돌아가서 보면,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건, ‘1)불쾌하실 수 있다. 2)사과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이건 여성주의고 뭐고를 떠나서 1) 다음에는 사과드린다가 나오는 게 일반상식적으로 맞습니다.


김어준의 논리는 아마 이런 거겠죠.
1. 나는 남자라 생래적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욕망이 많다.
2. 여성의 몸에 관심이 많은 걸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뭐가 문제냐.
3. 그 과정에서 불쾌한 여성이 있을 수 있다
4.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유롭게 내 욕망을 풀겠다. 이것은 낡은 도덕적 억압을 깨는 자유주의적 실천, 표현의 자유이다.


저는 김어준의 변명을 보면서 과거에 있었던 운동권 성폭력 논란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잠깐 나왔던 말로 오빠페미니즘이란 게 었었어요. 위에 말했다시피 당시 운동권에게 여성주의가 필수 덕목이었는데 그래서 남성 중에도 여성주의를 어설프게 줏어들은 사람이 많았죠. 오빠페미니즘은 이런 겁니다. 진보적 남성 선배가 진보적 여성 후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넌 진보한다는 애가 무슨 수구스럽게 정조를 지키니?’ 그리고 진보를 위해 여성후배와 같이 잡니다. …..


김어준은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분출하는 게 대단한 자유주의적 개혁적 실천인줄 알았겠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분출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백번 양보해서 ‘남자라서 생래적으로 성적 욕망을 품을 수는 있었다’ 하더라도 이건 공식적으로 발언해서는 안되고, 발언했다면 사과해야 마땅한 거죠.

난 내 욕망을 풀었을 뿐이니 사과할 필요가 없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
내 욕망을 맘대로 씨부린 결과 불쾌한 여성들이 생겼는데, 나는 욕망을 씨부리며 낄낄댈 자유가 있고, 그 자유를 지키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하니 여성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이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사회적 발언권을 높여가는 게 과연 여성에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여성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므로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건 무슨 억지 주장입니까?

지금 이게 다 말이 된다고 주장하는 게 ‘그나마 남들보다 여성주의에 호의적인 진보적인 사람들’의 수준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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