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4일 일요일

아래 반론에 대한 반론에 대한 재반론

우선 사소한 변명하자면 페미니즘 학습 여부는 ‘학문적으로 심도있게 연구한 전문가는 전혀 아니지만’ 부분을 제가 오독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는 게 별로 없는 데다 글재주가 없다보니 쉽고 간결한 글을 잘 못써요. 그걸 의식하고 오해를 줄이려다보면 글이 중언부언 길어지기도 하고. 이 부분은 제 능력의 한계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볼 때는 ‘여성이 약자여서 여성주의가 힘이 세다’는 것은 오해를 살 수 있을만큼 단순화된 표현이 아니라, 모종의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오해는 아마도 현재 여성이 사회적 약자임을 안다는 것이 바로 ‘여성주의’라고 단순화 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그건 그냥 사실에 대한 인지일 뿐이죠. 말씀하신 대로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반박할 수 없고 그래서 [사실인지 = 여성주의]라는 가정에서는 여성주의가 힘이 셀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정도로 추상화된 여성주의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성주의자들은 어떤 특정한 개인이고, 어떤 특정한 주장과 행동을 하는 ‘그 여성주의자’ 혹은 ‘이 여성주의자’이겠죠. 그리고 이들은 약합니다.
(참고로 이정도까지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이 인지되고 있는 현실은 실제로 존재해왔던 ‘이’, ‘저’ 여성주의자들의 성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문열씨의 언급을 보면, 예컨대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진정한 페미니즘’이 있고, 나는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이런 여성주의 혹은 저런 여성주의는 건강하지 않고, 나는 나의 방식으로 진정한 페미니즘을 알리고자 했을 뿐이라는 것이요.
하지만 제가 감히 말하자면, 이문열씨는 그 전에도 앞으로도 ‘진정한 페미니즘’을 구경할 수 없을 겁니다. 현실에는 ‘이런 페미니즘’이나 ‘저런 페미니즘’이 있을 뿐 ‘진정한 페미니즘’은 없을테니까요. 이로써 이문열씨는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여러 페미니즘을 비판할 뿐 아니라 다양한 마초적 논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되는 여성주의의 변종’으로 포장할 수 있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올바른 표현이 되려면 이렇게 수정하셔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성은 사회적으로 약자다, 따라서 '진정한?' 여성주의자는 힘이 세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주의자는 여전히 약자다.]

다음은 김어준 건에 대한 겁니다. 제가 문제로 파악하는 부분과 조금 상황 인식이 다르신 듯 합니다.
저는 김어준이 종아리를 쳐다봤다고 해서 잠재적 성폭력범이라고 규탄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비키니 사진을 보고 어떻게 하고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는 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김어준 자신이 ‘불쾌하실 수 있다’고 했거든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글들이 많으니 굳이 논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문제삼는 건 그 이후의 대응입니다.

제가 보기에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로 김어준이 내세운 논리는 대충 이런 겁니다.
1. 진정한?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여성들은 자기 몸으로 시위를 거침없이 할 수 있다. 이것에 대해 불쾌해하는 건 여성주의적이지 않다.
2. 그리고 남성은 원래 여자 벗은 몸을 보면 즐겁기 때문에, 굳이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이것은 낡은 진보의 쓸데없는 도덕주의이며 버려야 한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며 그냥 즐거워하면 된다.

그리고 오빠페미니즘에서는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진정한 진보(여성)주의자는 순결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순결 굳이 생각하지 마라] 제가 오빠페미니즘을 거론한 이유는 김어준이 그만큼 잡놈이라는 게 아니라, 이 논리가 닮았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서도요.

‘욕망의 분출’이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입니다.
아마 어떤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어떤 성적 언사가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사람이 저 사람에게 하는 농담이겠죠.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코피 운운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성차별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죠. 그 욕망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기왕에 ‘불쾌함을 표명하는 여성’들이 있는 바에야 잘못을 시인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 차이를 ‘이상사회’를 들어, 또는 자신이 ‘진보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정당화하는 것은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대단히 위험합니다. (이와 동일한 논리들이 여권을 억압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위의 댓글에도 적었듯이, 저는 여성주의고 뭐고를 떠나서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불쾌하시면 사과해야지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 여기에 어떤 이유를 대서 – 나는 이런 저런 진보적이므로, 너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므로 – 사과 안한다는 게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아스러울 뿐입니다.

호봉 인정의 예나 제가 생각하는 제가 생각하는 ‘진정으로 여성주의에 공감하는 남성’에 대해서는 별도의 긴 글이 필요할 듯 해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여성이 불쾌할 수 있고 또 실제로 불쾌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에게 다른 대의명분이 있으니 사과는 할 수 없다]는 사람은 만약 여성에 도움이 된다면 ‘그나마’ 도움이 되는 정도일 겁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