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일 목요일

김어준은 이 논란이 왜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듯

김어준의 설레발 때문에 나꼼수를 안들은 지 오래됐는데,
최근에 비키니 시위 인증으로 말들이 많았나보다.
나꼼수를 극찬하던 공지영씨까지 사과를 요구했고, 물론 나꼼수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고 했지만...

그리고 김어준의 입장 표명
김씨는 "비키니 발언이 성희롱이 되려면 권력관계나 불쾌해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청취자와 우리 사이에는 그런 게 없다"며 "비키니 시위(를 보는 시선)는 호오(好惡)의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여성들이 성적 약자 위치에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할(불쾌감을 표시하거나 비판할) 권리가 있다"고 비판을 일부 수긍했다. 그러나 "정치적 사안에 누드시위를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위할 자유도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한 뒤 "(비키니 시위는)발랄한 시위의 하나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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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은 이 논란을 "비키니 시위(를 보는 시선)는 호오(好惡)의 문제'로 보며, '다양한 방식의 시위의 자유'가 있고, '발랄한 시위의 하나'일 뿐이라고 한다. 즉, 이 논란의 근원이 '비키니 시위를 했기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실은 나꼼수의 지지자들 중 그나마 온건한 편인 많은 이들이 이러한 입장이다. 온건하지 않은 입장인 사람들은 이게 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간략히 개요를 정리해 보면
1. 어느 여성분이 비키니 차림에 정봉주 석방을 요구하는 문구를 동반하여 사진을 찍어 올렸고,
2. 나와라 정봉주 사이트의 남성 유저들이 이 사진을 보고 하악대면서 성적으로 소비했다.
3. 여기에 나꼼수팀은 '정봉주 의원님은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해 성욕감퇴제를 먹고 있으니 더 보내도 된다.' 라는 식으로 멘트를 날린다.

사과를 요구했던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불편해했던 지점은 1이 아니라 2와 3이다. 이점은 공지영도 천명하고 있다. 이들은 사랑하는 나꼼수 자체에 분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했던 것은, 비키니를 보는 시선의 차이가 아니라 비키니 시위가 소비되고 받아들여지는 방식이 지극히 마초적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진이 올라간 까페에는 "70먹은 노인도 벌떡 일어날..", "A컵도 힘내서 인증하라"라는 따위의 글들이 홍수를 이뤘다. 이 반응은 충분히 불쾌할 수 있다.(내가 남자라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봉도사님께 비키니/속옷 응원인증샷 프린트해서 가져갔더니 이거 치워 라고 하시면서도 눈을 못떼시더라구요~ 다음엔 이거 컬러로 뽑아서 편지써줘 라고 하셨습니다] 등의 면회 후기로 미루어 보아 이러한 반응을 못보진 않았을 나꼼수 팀도 주진우의 코피 발언 등으로 이런 분위기를 조장한다. 이러한 분위기에 불쾌감을 느끼고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왜 부당한지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생각할 때 논란의 핵심은 이렇다.
나꼼수를 듣는 팬들은 나름대로 자기들이 사회에 참여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데 기쁨과 보람을 느끼던 (남녀 구분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나꼼수의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일단 청취자들이 보람을 느끼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나꼼수에서는 과감한 '쫄지마 시바'에 해당하는 액션을 표출하자고 했으며,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일련의 시위 사진을 올렸고, 그 중 일부가 자신의 몸을 이용한 시위 멘트를 날렸다. 여기까지 남녀 구분이 필요없다. 이 사람들의 정체성은 MB 정권에 불만을 느낀 '시민'이었다. 그런데 어느 여자인 사람이 비키니 시위 사진을 올리면서 새로운 상황이 드러난다. 이제까지 그냥 시민이었던 사람들은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향유하는' 마초남들과 '여성의 몸이 성적으로 향유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여성'들이 생긴 것이다. (물론 어느 쪽도 아닌 부류도 많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어제까지의 동지. 여성들로서는 "우리 여성들은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어느 시점에서는 성적 탐닉의 대상이 될 뿐"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해도 오버라고는 할 수 없다. 실은 이게 오버인지 아닌지 남성성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우리 세상에서는 판단할 수가 없다. 설령 이게 오버라 하더라도 어쨋든 불쾌함을 느낀 여성들이 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상식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어떤 행위가 특정한 대상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상황 판단을 강요할 - 예컨데 논쟁에서의 도발 같은 - 목적이 아니었는데, 부수적으로 다른 사람의 불쾌감을 유발한 것이라면, 사과정도는 하는 게 예의다. '난 잘못한 거 없어. 내 원래의 목적은 그게 아니야. (그 정도는 니가 감안했어야지)'라면서 외면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여성에 대한 관점의 문제로 들어가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어느 때쯤에 진보와 여성주의에 대한 논란이 한참 벌어진 적이 있었다. 세세한 논점은 정리하기 힘들고 (잘 모르기도 한다) 여성주의와 정치적 진보(좌파?)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나, 남성주의(마초주의)가 그닥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이지 않다는 정도까지는 대충 합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인 문제이다. 실제로는 좌파 정치인이나 활동가 중에 마초가 꽤 있다.)

그리고 이것은 여성에 대한 배려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여성에 대한 배려 없음이 진보적이지 않기 때문에, 진보적이려면 사과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들은 '진보' 진영도 아니다. 본인들 스스로는 아마 노무현 때부터의 모토인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추구하는 합리적 중도 세력이라고 자임한다. '이런 문제로 같은 편에 칼을 꼽는 진보 따위 진절머리난다'는 식의 말도 쉽게 볼 수 있다. 문제는 '진보'가 되었건 '개혁'이 되었건, 아니면 '상식'이건, 그들이 목표로 하는 사회가 어디로 향해 있는가의 문제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은 이미 사회에 만연해 있고, 남자가 비키니를 보고 하악대는 게 뭐가 이상하냐, 이상한 일이 아니므로 '너희들은 기분나빠하지 마라.', '너희들이 날보고 기분나쁘다고 해서 내가 기분이 나쁘다. 이것은 분열주의' 라는 식의 마인드로 추구하는 사회 개혁.. 그것은 왠지 무서운 사회일 것 같다는 거다. 원래 비키니 논쟁은 나꼼수 팬들 내부에서 촉발된 것, 그것을 촉발시킨 일군의 사람들이 했던 사과 요구는 아마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나꼼수와 함께 만들어갈 사회가 그런 마초사회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저희를 안심시켜 주세요."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안해."

한편, 개혁파 마초주의의 특징은 가치판단의 서열화를 요구한다.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 일사분란한 대응이 필요하며, 따라서 덜 중요하고 좀더 사소한 가치는 당장은 무시되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나아가 적극적으로 무시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예컨대 MB와 싸워야 하는데 여성들이 쓸데없이 비키니 같은 걸로 딴지를 거느냐 하는 호통에 그것이 잘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개혁적 비키니 옹호 마초들은 '개혁'의 어느 한 단계를 뛰어넘는다. 또는 오래된 '민주 개혁 세력의 전통'으로 회귀한다. 너희들은 성적 대상으로 전락하더라도 대의를 위해서는 이를 불쾌해 하지 말고 참아야 한다 또는 불쾌해하지 말아야 한다. 불쾌해하는 것은 분열주의이며, 개혁 세력 내부의 분열은 조선일보가 기사화할 것이고, 이로써 개혁주자들이 공격받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너희가 한나라당 2중대라는 증거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와 같은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 실은 닥치고 대동단결은 성사가 불가능하다. 이게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1. 나의 생각이 절대로 옳아서 다른 사람들을 모두 논파시키고 나에게 굴복하게 만들거나,
2. 나의 수완이 절대로 뛰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가 조종할 수 있을 때뿐이다.
1의 생각에서 정말 뛰어나고 훌륭한 내 생각대로 모두 따라줘야 하는데 등/신같은 국민들이 나를 안따라줘서 나라가 망한다는 국개론이 나온다.
2의 생각에서 적당히 우중을 조종하여 반*** 전선으로 몰아가자는 음모론과 선거공학이니 하는 얘기가 나온다.
문제는 이 두 방식은 머릿속에서는 다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절대 성사되지 않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직관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며, 그에 설득되는 사람들의 수만큼 헛발질을 하다가 결국 진보개혁 진영 전체의 힘을 깎아먹는 결과로 나타난다. 나는 개인적으로 작금의 정치 파탄은 비판적 지지라거나 거악 소악 하는 논리에 진보 개혁 진영이 휘둘려온 역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

사소하지만 비키니녀 문제.
최근에는 비키니녀가 직접 장문의 글을 올렸는데,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내 사진 내가 올린 거고, 내 가슴 보고 남들이 하악대든 난 개의치 않으니 사과 요구를 중지하라." 실은 이것도 한참 핀트를 벗어난 것이다.
예를 들어 남녀 혼성의 어느 사이트에서 남자들이 도색 잡지를 보면서 낄낄댄다고 치자. 도색잡지의 주인공인 여자는 "남자들이 내 몸을 보고 헉헉대라고 찍은 것이고, 더 헉헉대고 외설스러운 반응이 나올 수록 나는 더 좋다."라고 한다. 그렇다 해도 해당 사이트의 여자들은 이 도색잡지를 보는 마초들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다. 불쾌하니까.
(물론 비키니 시위를 한 여자분을 도색잡지 모델로 비하한 것은 아니다. 그분은 정당한 정치적 발언을 한 것이고, 비키니 시위 자체에 불쾌할 이유가 없다. '개인적'으로 비키니 시위에 불쾌한 분이 있더라도 표현의 자유로 용인되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도색잡지 모델이든 비키니 시위녀든 여성의 몸을 '마초적으로 소비'하는 행태에 대해 당사자가 아니라도 불쾌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추가.
김어준이 '그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한 것은 사실이나 동시에 '아, 이런 식의 시위도 가능하구나'라며 정치적 동지로서 감탄한 것도 사실"이라며 "두 가지는 동시에 가능하다"며..' 드립을 쳤나보다. 얘는 진짜 답이 안나온다.
히피나 그런 문화의 일종으로 사회적 제약에 대해 쿨하게 가식 없이 들이받아버리는 자유주의가 유행한 적도 있었다. 김어준 얘는 그걸 핑계로 삼아서 자기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내버린다. 이런 건 쿨한 게 아니라 지저분한 거다. 비키니가 잘 어울리면 생물학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여성이고, 그렇지 않으면 완성도가 낮은 여성인가? 이게 키작은 남자는 루저 발언과 다를 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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