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5일 월요일

음모론이란 무엇인가?

0. 우선, 음모론에 관한 위키 백과의 설명
음모론(陰謀論, 영어: conspiracy theory)이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듣기 힘든 격동기나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러한 음모론들이 많이 유포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음모론은 사회의 위기 상황이나 인간의 한계 상황, 혼란 때 많이 유포되며, 상상력에 의존한 근거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물론 평범한 이야기에 살과 뼈가 덧붙여 부풀어 오른다. 대표 사례가 성전 기사단으로 중세 유럽의 영토와 재산을 둘러싼 영주 간의 싸움에서 음모론으로 비화한 것에서 볼 수 있다.
음모론은, 일반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사건을 주관적으로 이해하려 하거나 또는 부정확한 정보들이 난무할 때,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평소에 간과되었던 부분이 해당 대상과 관련점이나 유사점이 엿보일 때 이에 대해 과다하게 집중하면서 가정과 비약이 덧붙여져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 저변에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엔 절대 우연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엿보인다. 즉, 지나치게 사건 진행 간의 개연성에 집착하다 그 과정에서 사건의 발생을 가능하게 한 요소들 중에서 우연적이었지만 또한 결정적이었던 요소는 일체 배제하고, 반대로 사건 발생 당대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간과된 가정들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근거로 삼는 부분이 많이 보인다.

간략히 말해 어떤 사건, 현상에 대한 설명인데 부정확한 정보로 인한 혼란 속에서 주로 발생하며, 일련의 사건들을 배후의 조직이나 단체에 의해 기획되었고 주로 가정하고, 여러가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소를 배제하는 한편,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부분을 과장, 주목하여 만들어진 설명입니다.
물론, 다소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그렇지 않다고해서 그것이 꼭 진실에 가깝거나 먼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또한 사건의 배후에 실제로 단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쨋거나 음모론의 전체적인 윤곽과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음모론에 대해 알아봅시다.

1. 사람이라는 동물
아마 진화의 결과일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이 가진 특성 중의 하나는, 인간이 사건, 사실, 현상에 대한 어떤 '설명'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요즘에야 과학적 분석과 설명이 많은 것을 설명해주고 있지만, 아직도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틈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틈은 '미지의 것'으로 남겨지기 보다는 의례히 과학이 아닌 다른 것으로 '설명'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죠. 사람들은 '설명'되지 않는 어떤 것의 존재를 그냥 두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인간이 겪어온 생물학적 진화의 일종의 부작용일 것입니다.
이 진화의 동기로는 첫째 두려움을 해소하는 방식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 천재지변이나 재난은 아무나 임의로 덮치는 게 아니라 잘못한 자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하지 않으면 안심해도 좋다.
둘째로는 자연에 대한 지식 축적의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일식은 불개가 해를 삼켰다 뱉었다 하는 것, 해와 달은 모종의 신화적 이유로 만날 수 없다. 나일강의 범람은 오시리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시스의 눈물 ..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기에 비합리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나일강이 반복적으로 범람한다는 지식을 전하기에는 충분한 이야기입니다.
세째로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패턴 인식에 강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강한 것은 얼굴을 인식하는 것인데, 점 두개와 직선 하나에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초식-잡식의 야행성 동물에서 초원을 거닐고 대형 포식 동물과 경쟁해온 인간의 진화 여정상 포식 동물의 일정한 패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는 사람이 여러 가지 사물에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어떤 사물이나 자연의 섭리 같은 것을 의인화하는 경향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합니다.
대략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접하는 사물, 사건, 현상에 대해 어떤 형태로건 설명을 붙이려 합니다.

2. 사실과 추론
사건에 대한 설명은 팩트-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해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나일강이 범람한다는 것은 팩트이고, 이것이 오시리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시스의 눈물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은 범람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죠. 과학적으로는 상류에 내리는 비와 빙하 녹은 물이라는 또다른 사실을 이유로 제시합니다. 사실 이집트 인들도 이를 알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시스가 하늘에 있고 그 눈물이 비로 내린다고 약간 수정하면 역시 설명할 수 있죠. 이집트 인들은 범람에 관해 하나의 사실과 장대한 신화를 필요로 했는데, 이 단계에서는 두 개의 사실을 확보했고 신화는 여전히 장대하지만, 해설해야 할 분량은 약간 더 줄었습니다.
현대 과학은 더욱더 많은 사실들을 채집하고 나열합니다. 그에 따라 자연 현상, 심지어 인간의 심리 현상에까지 합리적-과학적으로 확인되는 팩트들이 훨씬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과학적 - 합리적 사고방식을 정착시켰다는 점입니다.
사실 아무리 많은 사실을 확보하더라도 우리가 인간인 한 매끄러운 팩트의 연속체로서 사건을 파악할 순 없습니다. 사건과 사건 사이는 여전히 틈이 있고, 그 틈은 해설로 메꿔져야 하죠. 이처럼 사실의 틈을 메꾸는 해설을 우리는 '추론'이라고 합니다.
정상적인 추론은 합리적 사고방식에 따라, 논리적 규칙의 제한을 받으며, 부인할 수 없는 팩트들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3. 음모론과 그 특징
앞에서 음모론을 정의했는데, 그 유개념은 '현상에 대한 어떤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사건, 현상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데, 그 설명에 해당하는 것 중 어떤 것은 음모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설명은 팩트와 추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팩트는 바뀔 것이 없으니 추론 부분에서 갈리는 것이죠. 편의상 음모론 설명에 대비되는 것을 합리적 설명이라고 하자면, 다음과 같이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음모론 = 팩트 + 음모론적 추론
합리적 설명 = 팩트 + 합리적 추론
* 물론 어떤 팩트를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 혹은 취사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도 음모론을 규정하겠습니다만, 여기서는 사실을 모두 인정하는 아주 온건한? 형태의 음모론을 가정합니다.

이제 음모론을 정하기 위해서는 음모론적 추론, 그것이 합리적 추론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먼저 답을 말하자면 음모론적 추론은 '추론이 끼어들었다'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팩트들 사이에 삽입되는 추론의 양과 질, 그리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3-1 음모론적 추론의 특징, 추론의 양
추론의 양이라 함은 추론을 전개하기에 충분한 팩트들이 취합되었느냐의 여부를 가리킵니다. 인간이 고도로 발전시킨 패턴 인식의 도움을 받아도, 저기에 어떤 얼굴이 있다는 결론을 내기 위해 최소한 점 두개와 선 하나가 필요합니다. ' _ '
물론 ' _ ' 이것이 어떤 도형의 일부인지, 우연히 세 개의 점과 선이 흩뿌려진 결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도형에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혹은 둥근 윤곽이 있다는 사실, 콧구멍이 있다는 사실 등 점점 더 많은 팩트를 기초로 할 수록 추론으로 채워넣어야 하는 부분은 줄어들겠죠.
반대로 팩트의 수가 어느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추론이라기 보다는 상상에 가까운 작업이 될 겁니다. 이 경우 많은 가정 위에 성립되는 추론의 정확성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즉, 기본적으로 어떤 설명이 제시하고 있는 팩트의 수는 대체로 설명의 신뢰성과 비례하는데, 이는 그 이론 스스로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가늠할 수 있는 신뢰도에 비해 현격히 높은 수준의 확정을 밀고 나가는 것은 일단 음모론적이라고 봐야 겠죠.

3-2. 음모론적 추론의 특징 - 추론의 양
추론의 양보다 더 중요한 건 질입니다. 추론이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드러난 이 팩트와 저 팩트를 듣기좋게 연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추론이 사실일 경우 발생하는 현상들을 추정해보고, 이것이 무리없이 설명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선관위가 은밀한 세력에 의해 포섭되어 불법적인 투표소 변경을 했다.'라는 추론의 경우, 이를 사실로 가정하면 그 은밀한 세력은 수백 곳의 읍면동 선관위라는 점조직에 조직원을 침투시킨 거대한 조직일 것입니다. (이는 투표소 변경 결정을 읍면동 선관위에서 담당한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조직은 극악무도한 마음을 먹고 300여 곳의 읍면동 선관위를 포섭하여 겨우 다른 선거와 비슷한 수준의 투표소 변경을 감행합니다. 게다가 최소 300여 명의 읍면동 선관위 공무원들은 일사분란하게 그에 따랐고 아직까지 양심선언 한명 안합니다. 저 추론을 사실이라고 인정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마구 나타나므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정상적으로 해명하지 못한 채 진실이라고 밀고 나가는 것은 음모론입니다.

다른 예를 들면 '은밀한 검은 조직의 포섭에 의해 선관위 전산실 직원이 포섭되어 내부에서 투표소 조회 서비스를 막았다'는 추론을 봅시다. 서버 조작의 경우 선관위 전산실 직원을 대부분 매수하여 일사분란하게 작전을 수행하게 하면서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하고 일부는 정상 서비스가 되게 하면서 일부만 에러를 내게 하는 복잡계 컴퓨팅을 시도합니다. 모 교수가 입증했듯이 코드 몇줄로 가능한데 선을 뺐다 꼽았다 라우터에 에러를 일으키고 하면서요. 더우기 전체적으로 이 계획은 아침 시간대 투표율과 변경된 투표소 등을 감안해보면, 아주 많이 잡아봐야 겨우 몇천표 얻자고 그 거대한 계획을 발동시켰다는 얘기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투표소 조작조- 선관위 서버조 - 디도스 훼이크조로 이루어진 거대한 음모를 상정하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너무나 많이 발생합니다.
*물론 설명할 수 있기는 합니다. 읍면동 선관위 공무원들은 모두 한나라당 골수 추종자들이고, 중앙 선관위 전산실 직원들 역시 그러하다. 이 음모를 기획한 사람은 아주 심하게 미쳤으며, 특히 산수를 못한다. ......
이것은 음모론적 추론이 가지고 있는 질적 특징이죠. 어떤 사실을 설명하면 그 설명을 설명하기 위해 더 큰 설명이 필요해지는 것.

4. 확증편향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사실을 수용하는 능력과 태도가 달라짐을 말합니다. 확증편향 때문에 자신이 지지하는 신념의 증거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잘 찾아내고 더 쉽게 수용하는데, 이것은 무슨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일부인 듯 합니다. 이 때문에 과학자는 자신의 가설을 반증하는 방식으로 가설을 입증할 것을 권고받습니다.
하여간 확증편향은 음모론이 확산되는 데 큰 도움을 주는데 일단 음모론의 가설 - 이것은 재미는 있습니다 -에 신뢰를 주기 시작하면 그 가설에 맞는 증거만을 보거나, 실제로는 반대 증거인데도 인지과정에서 음모론을 지지하는 증거로 둔갑시키거나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선관위에서 공개한 로그 분석을 통해 선관위를 통렬히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중 하나는 '로그를 분석해보니 6시~8시에 5천명에게 10만 페이지를 정상 서비스했다. 정상 서비스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선을 뽑았냐."라는 질타가 있죠. 이에 대한 기술적 논쟁은 다른 수준에서 다뤄야 하는 문제고, 재미있는 것은 '선관위가 심각한 잘못을 했다는 결론'에 주목하여 이 주장을 '선관위에서 조직적으로 서비스를 못하게 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원래 주장은 '6시~8시에 서비스를 차단' 하는 게 선관위의 목적이라는 거죠.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 말이 자기 주장을 입증하는지 반증하는지 판단력을 상실한 겁니다.
최근에 나오는 증거들에 이리흥분 저리흥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증거랍시고 내놓는 게 다들 이모양입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좁은 시야를 가지고 '기술적으로는 가능'함을 이유로 뻘 소리를 하기도 하고요.

.... 이래선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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