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8일 목요일

기소청탁 사건에 대한 의견 ..

사태가 대충 정리되어 가는 것 같은데.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김판사가 박검사에게 청탁을 했다.
2. 박검사는 청탁을 수용했고, 이를 후임에게 전달했다.
3. 나경원의 고발로 검찰이 조사를 시작
4. 어떤 이유로 박검사가 검찰 공안부에 청탁이 사실이었음을 진술
5. 박검사 휴가
6. 나꼼수 "박검사가 청탁이 사실이었음 진술했다." 방송
7. 박검사 외부 연락 차단
8. 박검사 사표

여기서 7과 6의 순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휴가를 내고 외부와 연락을 차단하고 있었던 중 꼼수 방송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하여간, 새로운 증거들을 취합하여 타임라인으로 늘어놓으면 두 가지가 눈에 띈다.

4. 박검사는 어떤 이유로 검찰에 가서 진술을 했을까. 그 진술의 성격은 무엇인가?
5. 휴가는 어떤 의미일까?

꼼수 : 주기자를 보호하기 위한 영웅적 고발 = 매우 의로운 박검사
중권 : 같은 법조인 또는 판사 선배와 억울한 사람 모두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한 은밀한 사실 진술 = 비교적 양심적인 박검사

그동안 5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새로 밝혀진 사실들과 결합해 보면 검찰에서의 진술은 박검사에게 중대한 심경의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
이제 새로운 시나리오도 가능해졌음

새가설1 : 검찰의 조사에 소환되어 적극적인 거짓말을 못하고 사실을 진술 = 소극적, 수동적, 최소한의 양심적 박검사 = 휴가는 일종의 견책 상태일 수도 있다.
새가설2 : 기소청탁이 사실이었고 본인이 공범이었음을 자수하러 감 = 소극적, 능동적, 적당히 양심적 박검사 = 휴가는 본인의 자책감 등으로 심경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
물론 가설들일 뿐이지만 ..

후임인 최검사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천연덕스럽게 군 것 보다야 박검사가 굉장히 양심적인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정의감에 충만한 검사라고 보기는 좀 어렵다. 일단 기소청탁을 수용하고 후임에게 전달까지 하면서 적극적 역할을 하였으므로 ... 영웅적 고발일 가능성은 낮은 듯 하다. 오히려 진중권이 제시한 것과 이유는 좀 다르지만 박검사로서는 주진우가 처벌되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사건을 무마하는 쪽을 바랬을 가능성이 높다.

나꼼수가 '왜' 이 사실을 터뜨렸나 하는 문제도 짚어볼 수 있다.
일단 박검사가 검찰에 사실을 밝힌 단계에서 주진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실명을 깠는데, 이는 사건을 더 확대하자는 얘기. 나꼼수의 입장은 '사건을 키워서 국민적 관심을 주어야 박검사가 보호된다.'라는 것이고. 그런데 살펴본 바에 의하면 사건이 커지면 박검사는 굉장히 곤란한 처지에 처한다.

여기서 다시 의문
나꼼수는 이러한 사실을 얼마나 알고 터뜨렸을까?
1. 나꼼수는 적어도 박검사와 관련한 부분은 잘 몰랐다. 나꼼수의 시나리오에서 박검사는 굉장히 정의로운 검사다. '기소청탁 공범'인 박검사상과는 잘 맞지 않는데, 이는 최초의 주진우 취재 과정에서 박검사가 자신에 대한 부분은 빼고 기소청탁의 사실 여부만을 제보했고, 주진우가 이를 전적으로 받아들였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경우 나꼼수는 굉장히 정의로운 박검사를 위해 대신 뻥 터뜨려줬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나꼼수에게 박검사를 대신하여 그런 판단을 내리고 행동에 돌입할 권리가 있느냐는 점은 문제가 된다.

2. 나꼼수는 박검사의 범죄 연루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명을 깠다는 것은 이 사건을 공론의 장에 빼도박도 못하게 공표하겠다는 얘기. 그러나 이 것은 나경원과 남편과 악의 무리 검찰(?)과는 달리 사실을 얘기해줄 사람을 전제로 한다. 그 사람은 물론 박검사.. 즉, '박검사는 거짓말을 못하니까, 공론장에 끌어내 놓으면 기소청탁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할 수 있다.'라는 얘기가 된다. 계산상으로야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의적으로 박검사에게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박검사의 마지막 남은 양심을 아주 잔인하게 이용해먹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주진우는 '취재원 보호'라는 의무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

다시 '왜?'를 생각해 보면 .....
1 상황에서 나꼼수는 밝힌 바와 같이 순수한 선의로, 부정한 검찰 조직에 대항하는 선량하고 힘없는 일개 평검사에게 국민적 관심을 실어주기 위해 공표했다. 결과는 물론 대실패. 실패의 이유는 자기가 소설을 쓰고 그 소설에 맞춰서 행동했기 때문이다.
본인의 경험으로는 생각없이 열정만 충만한 사람들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런데 '열정' 자체로 긍정적이라면서 (일부는 일리가 있다.) 열정을 북돋울만한 소설들을 써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김어준이다. 그런데 이들이 소설을 써줄 수록 '열정과 조금의 이성'을 겸비했던 최초의 집단은 점점 '열정만'을 강조하게 되고 결국엔 맹목적인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소수로 전락한다.
이 단계에서 열정을 촉발시킨 최초의 긍정적인 의미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처음에 원했던 어떤 좋은 목적은 이들 때문에 오히려 방해를 받게 된다. 꼼수, 정확히는 김어준식 소설이 듣기는 좋아도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은 그냥 소설로 즐겨라.

.....
2 상황에서는 문제가 복잡하다. 사건을 '국민적 관심사'로 키운다는 건 일종의 정치적 퍼포먼스가 될텐데 ... 이건 아닐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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