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9일 금요일

기소청탁 두 번째

한 트위터리안과의 대화
밤늦게까지 이어진 대화였지만, 개인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논쟁에 대해 가지고 있던 회의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일이 되었다. 인터넷용 격렬한 말(=비속어)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대충 합의가 된 듯.

1. 문제가 되는 상황
일단, 트위터 토론이 그렇듯 여러 논점이 있고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달라서 처음에 혼선이 있었는데,
혼선 중의 하나를 짚고 넘어가자면 '아웃팅인가 = 즉, 취재원 보호 의무를 어겼는가의 핵심적인 문제는
[박검사가 기소청탁 사실을 진술했다.]가 아니라 [박검사가 주진우의 취재원이었다.]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취재원은 지난 10월 주진우의 폭로 '검찰 관계자에게 들었는데, 기소청탁이 있었다.'라는 기사에 대한 취재원을 가리키며, '그 관계자가 박검사다'라는 얘기가 되겠다.
** 따라서 설령 취재원이었더라도 나꼼수는 [박모라는 검사가 있는데, 검찰에 가서 기소청탁 사실을 시인했다더라] 라고 방송할 수 있었고, 이 경우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1-1 선결해야 할 사소한 논점
- 나꼼수는 제보자의 신원을 밝힌 것이 맞는가
나꼼수의 정확한 워딩은 ... 은 안들어서 모르고 나꼼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 인정하는 내용은 '검사는 진술하겠다고 했고, 꼼수 팀에서는 죽으라고 할 수 없으니 하지 마시라 했고, 꼼수팀에 말도 없이 가서 진술해버렸다.' 라고 한다.
[박검사가 주진우의 취재원이다.]라고 정확한 표현은 없었다. 이를 들어 '주진우가 박검사를 취재원이라 밝힌 적 없고 아웃팅이 아니다.]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사건에 대해 진술을 하니 마니 하면서' 논의를 할 정도면 당연히 검찰 상황에 대한 정보가 왔다갔다 했을 것이고, 검찰 및 사건에 대한 정보는 검사로부터 기자에게 흘러들어갔다고 보아야 한다. 명시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으나, 취재원임을 밝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것은 그 트위터리안과의 합의 사항)

2.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편의상 몇 개의 시점으로 나누어 아웃팅 여부를 판단해 보자.
ㄱ. 주진우가 '(익명의) 검찰 관계자'로부터 기소청탁 사실이 있었음을 제보 받아 보도함.
ㄴ. 박검사가 공안2부에 가서 기소청탁 사실이 있었음을 시인함
ㄷ. 나꼼수가 박검사에 대해 언급함 (위에 말한 대로, 취재원임을 밝힌 것으로 간주함)

나꼼수가 아웃팅을 했다는 얘기는, 3번에 가서야 비로소 박검사가 나꼼수의 취재원이었음을 알게되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2번에서 이미 실질적으로 박검사가 제보자임을 확신할 수 있으니, 사실상 공개된 제보자임이 공개된 것이고 나꼼수의 발언은 제보자가 누구인지 폭로하는 의미는 거의 없다는 반론이 있었다.
이유는 (1) 검찰에 진술한 내용은 어차피 빼도밖도 못하게 공개되며, (2) 제보자가 아닌데도 그런 양심선언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

(1) 진술 내용은 어차피 공개되므로 이미 확정적인 사실이 된다는 의견
- 검찰 조사의 성격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상황은 나경원측의 명예훼손 고소와 주진우의 무고죄 고소로 발생한 것이다. 검찰은 일단 사전 조사를 해야 한다. 꼼수 방송의 내용 (정확한 워딩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꼼수 애청자가 작성했을 봉주 7회 요약이라는 게시글에서 퍼왔다. [이건으로 공안 2부가 맡아서 그당시 사건을 맡은 검사를 조사했다. 검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검사는 주진우에게 구속영장을 치기로 내부결정을 한다.] 이로 보아도 검찰은 이미 이 사건에 대해 담당 검사를 조사했다.
조사의 내용은 '기소청탁이 있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공안2부에서 담당 검사를 붙잡고 '니가 제보자냐?'라고 물을 이유가 없다. 설령 물었다 하더라도 박검사의 대답은 둘로 나뉜다. '예/아니오.' 하지만, 박검사가 공안 2부에서 어떤 질문을 받고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아직까지 정보가 없다. 그런 이유로 [검사가 저 질문을 한 것이 틀림없고, 또한 박검사는 예라고 답한 것이 틀림 없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진술에 드러나 있을 것이고 그 내용은 빼도밖도 못하는 사실로, 공표될 것이 뻔하므로' 이미 공표된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 검찰에 출두해 이미 사실로 확정되었어도 주진우는 밝혀서는 안된다는 것이 취재원 보호 의무인 듯 하나, 여기서는 그 점은 논의하지 않았다.

(2) 박검사가 공안 2부에 가서 사실을 밝힌 행위 자체가 스스로 제보자임을 인증했다는 의견
- 현재까지의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ㄱ. 박검사는 과거 기소청탁에 가담했다.
ㄴ. (이를 주진우에게 제보했다.)
ㄷ. 고소전이 벌어지자 1차 조사를 받았다. (꼼수에 언급된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은 박검사의 것인지 최검사의 것인지 알 수 없다)
ㄹ. (나꼼수측과 상의를 했다.)
ㅁ. 결국 검찰에 가서 사실을 시인했다.
ㅂ. 휴가를 떠났다.
ㅅ. (나꼼수가 터뜨리자 외부와 연락을 끊고 사표를 냈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박검사가 정의감에 불타는 영웅은 아니지만, 꽤나 양심적인 성향이라는 점이다.

- 박은정 외에는 제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가?
요컨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당시 담당 검사인 박은정이 청탁이 있었던 사실을 밝혔다.'라고 했을 때, 우리가 이 사실로부터 '박은정이 주진우의 취재원'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다른 제보자 후보의 존재 : 최소한 최검사라는 동등한 정보량을 가진 자가 존재하고, (검찰 조직과 그 운영을 몰라 대충 말하자면) 그 밑의 수사관이나 아니면 위의 부장검사라던가, 아주 희박하게 우연히 지나가다 포스트잍을 본 행정직원, 청소아줌마 등의 제보 용의자가 있을 수 있다. 이 가능성이 부정되지 않는한 주진우의 취재원이 박검사일수밖에 없다는 추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간접 증거? : 만약 박검사(또는 최검사와 박검사, 즉 사건 담당 검사) 외에 이 사실을 알 수도 제보할 수 없는 것이 '상식'이라면, 주진우 최초의 보도 - 검찰 관계자로부터 들었는데 기소청탁은 사실 - 로부터 박검사가 딸려나와야 한다다. 그러나 최초 보도 시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담당검사인 박검사 (혹은 후임인 최검사)가 취재원일 수밖에 없다고 추측한 것 같지는 않다.

사후적 추론 : 예컨대 나꼼수의 보도 없이 지금까지 상황이 전개되었다고 가정하면,
1차 '진술사실 폭로' 시점에서 '청탁 거부하고 지금은 폭로한 양심검사' 또는 '기소청탁의 공범이지만 꼼수의 활약에 압박받아 참회한 검사'의 두가지 가능성이 거의 대등한 확률로 존재한다(주1). (역시 꼼수 방송 없이) 며칠 후 박은정의 진술 내용은 '본인이 공범임을 자백'한 것으로 밝혀진다. 이는 외형상 제보자라기보다는 압박으로 인한 참회의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실어준다.
** 주1 : 만약 '거부 - 폭로'를 가정한다면, 나경원은 '청탁했을 당시 이를 거부한 양심적인 검사'가 있었음을 알면서도 고소를 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아무리 정치적 고소라도 너무나 위험이 커보인다. 따라서 '나경원의 고소' 사실로부터 청탁 당시에는 박검사가 공범이었을 것이라는 미약한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라는 게 워낙 비상식적인 일이 많으니 미약한 추측일 뿐이다.

** 요컨대 박검사가 공안부에 청탁 사실을 진술하였다 하더라도, 다른 제보자의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으며, 진술했다는 사실도 다양하게 해석 가능하므로, 박검사가 제보자임을 특정할 수 없다.



- 박은정은 제보자가 아니라면 진술했을리 없다?
박검사는 취재원 여부를 떠나 사건에 가장 깊이 개입한 사람의 하나이다. 박검사는 당연히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아마 잘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공안2부에 가서 진술할 때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제보자가 아니더라도 주기자가 피해를 입을 상황을 알고 있었다고 본다.)
물론 박검사의 심경은 외부인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 본인은 분명 기소청탁이 사실임을 알며, 기소청탁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무고한 기자가 불이익을 받는다.
(나) 자기가 제보했기 때문에 주진우가 피해를 받는다는 책임감, 또는 그동안의 동지의식?에서 비롯된 주진우에 대한 배려로 진술했다.

박은정이 진술했다면 제보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박검사가 (가)의 상황만으로는 진술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가) + (나)의 상황에서만 진술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가)의 상황을 특별히 배제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사후적으로 많은 일을 알고 있는데, 박검사는 꽤 양심적이다.)
** 여기에서 우리는 박은정 검사의 심경 자체를 알 필요는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에' (가)를 배제하고 (나)일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박검사가 공안부에 가서 기소청탁이 사실임을 진술한 시점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 그리고 공안부 검사는 - 박은정이 꼼수의 제보자임을 알 수 없다.
** 다만, 공안부 검사는 검찰 내부의 스크린을 통해, 예컨대 '박검사가 평소 양심적이었다.' 라거나 '당시 박검사가 주기자를 만나는 것을 보았다'라거나 하는 제보 등등을 통해 박검사가 제보자였을 것이라고 독자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주기자가 취재원을 밝히는 것이 정당한가 여부와 논리적 관계가 없다.

3. 결론
박검사가 제보자였음은 '꼼수의 방송을 통해 비로소' 확신할 수 있게된다.

4. 논의하지 않은, 남은 문제
- 진술한 시점에 '박검사가 주진우의 제보원임이 확정'되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 사실을 알게된다 하더라도 주진우는 자기의 취재원을 밝혀서는 안된다는 것이 취재원 보호 원칙인 듯 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정도까지 강력하게 지켜지지야 않겠지만.

- 나꼼수가 취재원이 박은정 검사임을 밝혀서 '어떤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했는가' 여부는 논의하지 않았다. 많은 가정들이 필요하고 대부분 쓸모없는 일일 것이다. 다만 나꼼수의 발언으로 박검사에게 어떤 피해가 생기거나 혹은 심지어 어떤 이익이 결과적으로 생겼다 하더라도 박검사를 대신하여 오픈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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