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7일 토요일

정봉주 판결문




9쪽 짜리로, 이 부분이 핵심 쟁점이라고 생각된다.

가카가 김경준과 공모하여 주가조작 및 횡령을 했다.
가카가 다스의 소유주이다.

라는 정봉주 전 의원의 주장에
1. 구체적 증거가 있느냐.
- 아쉽지만 구체적 증거는 없었다. 하다못해 주진우 기자가 그토록 원했던 에리카 누나와의 밀월 사진도 ..

2. 진실한지 확인할 시간과 물리적 여유가 있었느냐.
-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당시 당력을 기울여 위 주장의 확고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3. 어떠한 소문을 듣고 그 진실성에 강한 의문을 품고서도 감히 공표한 경우에 해당되느냐
- 정봉주 전 의원은 아마도 진실하다고 확신하였을 것이다.
- 확신 여부는 상당히 주관적이므로, 진실의 근거로 제출하는 증거(검찰이 허위라고 한)에 대해 경력, 지위, 공표 경위, 시점 등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의 최후 진술처럼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법정으로 가져 온 것 자체가 불행한 일입니다. 국민의 명령을 받는, 국민의 대의 기관이며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의 정상적인 정치 활동을 법으로 판단하기 위해 이 법정으로 가져온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인 것입니다.]
이 재판은 열린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인 것이 맞다.

그러나 역시 정봉주 전 의원이 최후 진술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미 그 전부터 한나라당 내부에서 제기되었던 - 그러나 그 때도 증명되지 않았던 - 의혹을

[저는 이러한 (국회에서 발표할 경우 주어지는 국회의원 면책) 특권을 포기하고 기자회견이라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기자 회견을 하면 제가 하는 발언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기자회견을 택한 것은 검증의 책임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근거 없는 허위 사실 날조라고 하는 정치적 공방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가 우선되었기 때문입니다. ]

책임을 져야하는 기자회견 방식으로 발표하였고, - 그 전의 박근혜와 마찬가지로 -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고 하는 게 문제다. 성공했다면 좋았을 것을 .....

아마도 배심원 심판이라면 - 이런 경우에도 열리는 지 모르겠지만 - 정봉주에게 승산이 더 높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재의 법체계 하에서 판사의 판결을 무턱대고 나무라기만도 어렵지 않은가 싶다. 법 자체를 바꾸던지..

진정성 ...

말 자체가 나쁜 의미는 아닐진대 정말 보기 싫은 말이 되었다.

벌써 한 7-8년 되었으니 지금 쓰긴 새삼스럽지만, 요즘에 다시 진정성 찾는 사람들이 있어서.
게다가 요즘은 '진정성'이라는 게 공식 용어가 되어버렸다. 의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부 당국은 대북 관계에 진정성을 보여라라든지 박근혜 비대위장에게 쇄신의 진정성을 느꼈다느니 하는 식으로 '진정성' 저작권자들의 반대편에서도 쓰고 있으니까.
- 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진정성'에 관한 한 둘은 거의 차이가 없으니까.

유시민느님의 말을 들어보자.
서울대학교 강연 中.
'진정성은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타당한 것인가 타당치 못한 것인가 이것뿐이다.'
참으로 훌륭한 말씀이다. 역시 똑똑하긴 똑똑하구나 .... 라기보다 이게 당연한 거지.

참고로 진정성은 표준 국어 단어가 아니다.
아마 다음 두 단어 중 하나에 성질을 의미하는 性 자를 붙여서 만들어진 단어 같다.
진정02(眞正) 부사거짓이 없이 참으로. ≒진성03(眞成)ㆍ진정히.
진정05(眞情) 명사「1」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 「2」참된 사정.
단어적 의미로 보자면 '참된 사정'에 가까울 것 같긴 한데, 사실 '마음의 상태'라는 위 언명과 결부시켜 보면 '말하거나 행하는 자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에 대한 참된 사정'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사실은 '참된'이라기보다는 진심 혹은 본심, 내지는 속사정 정도의 의미가 어울릴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의미는 좋은 편(?)에 속한다. 성선설을 믿는 한 '진심'은 좋은 것이니까. 특히 정치적이나 사회적인 문제에서 '진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진정성 현상이 나타난 게 사실 노무현 대선 시기부터이기 때문에 진정성 얘기를 하자면 친노 지지세력(세칭 노빠)들이 거론될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분이 지금은 좀 쇠락한 정치인 유시민인데.
예컨데 유시민 지지자들은 '유시민에게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라고 하고, 노빠 출신 중 비교적 유시민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유시민의 행적에서 진정성을 볼 수 없다.'라고 한다. 간단히 검색을 해보니, 문성근의 진정성을 배워라 라는 충고, 최근 쇠락은 진정성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충고 등이 있다. 아마 최근 통합 과정에서 독자적(이라기보다 정략적) 모습을 많이 보여서 비판적 의견이 많이 생겼나보다.
요컨대 '너 개인의 입지 말고 (문성근씨처럼) 우리편으로서의 우직한 충성도를 증명해라.' 라는 것.

철지난 얘기지만, 잊을 수 없는 얘기라 언급하자면, "파병은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노무현의 진정성을 고려할 때 그 안에 복잡한 국제 정세와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지지해야 한다"라는 식의 논리가 있었다.
간단히 쓰면 이렇다. 우리편이니까 반대하는 일도 지지하자.

'진정성'이 실제로 사용될 때의 의미는 '우리편'인지 '적'인지를 구분할 때 쓰이는 것이다.
'진정성'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진영논리의 핵심 키워드인 셈이다.
진영논리의 확산과 함께 - 이것은 '빠'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 사건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우리편인가?가 판단의 기준이 되면서 소위 개혁적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논제가 삼천포로 빠지게 되었다.
파병이 옳은가 그른가가 논점이 되지 않고, '우리 정권에게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가 논점로
(사실 이 부분에서 앞서 서울대 강연을 하셨던 유시민씨도 자유롭지 않다.)
경쟁했었던 (과거형임) 후보에게 2억을 준 사실이 적절한가 아닌가가 논제가 되지 않고 '우리편인가 아닌가?'가 논점으로 변한다.

이러한 현상이 횡행하다보니 이제는 '진정성이 있는가 없는가'가 다른 가치판단에 우선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나꼼수의 욕에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 욕은 비판할 수 없다.' 라는 식이다.
이 정도라면 애교지만, '우리편의 치부를 먼저 공격하는 입진보는 한나라당의 꼭두각시'라는 식까지 나가게 되면 해악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입진보가 논리적으로 맞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는 심경고백까지 나오고 보면, 이 진정성이라는 게 정신건강에 얼마나 좋지 않은지 알 수 있다.
방금 본 트윗에 이런 게 있다. "정의는 양심이고 상식은 논리입니다. ..... 상식이 바로 선다고 정의가 승리하는건 아니지 않는지요." ... 답이 없다.

정말 문제는 이들이 비교적 사회에서 정의감을 가지고 정치에 관심이 많으며 한 똑똑한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국개론을 정말 싫어하는데, 이런 현상을 보면 꼭 부정할 것만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유시민씨 말대로 진정성의 원래 의미는 마음의 상태일 뿐이다. 나꼼수의 진정성이 크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진정성이 크다는 건 열정적이라는 것이고, 사람이라는 동물은 열정적인 대상에 쉽게 동화되고 자기의 열정을 끄집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꼭 '옳으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몹시 높다. 그래서 항상 반성하고 경계해야 하는 법이다.

이들은 아마 열정적으로 진보적(?), 상식적, 진짜보수적(?) 개혁을 원하고 있을텐데, 열정의 보람은 크게 찾기 어려울 듯 하다. 최대치는 아마 한나라당을 이기는 그 한순간의 만족감으로 끝날 것 같다. - 이것도 내가 보기에는 사실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진보진영이 진영논리에 완전히 먹혀버린 직후이므로 그 여파로 가능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

고전 한토막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한 사내는, 튼튼한 천리마(千里馬)가 이끄는 마차에 몸을 싣고, 날 듯 한 기세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도중 주막에서 잠간 쉬고 있는데, 인근의 한 백성이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으니, ‘나는 지금 저 멀리 초(楚)나라로 가는 길이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백성은 감작 놀라 ‘손님 큰일 났군요. 초나라로 가려면 이 길 반대편으로 가야하는데, 지금이라도 마차를 돌려 가셔야 합니다.’하고 이러주었습니다.

이에 나그네는 거만을 떨면서 장담하기를 ‘걱정할 것 없소이다. 내 마차는 튼튼하고 말은 천리마니 미리 겁낼 것 없을 것이요’하고 일어서려는데, 그 백성은 ‘아니지요. 아무리 튼튼한 마차를 천리마가 끈다고 한들, 초나라로 가는 손님이 반대 방향으로 가면, 길은 점점 멀어질 테인데, 괜찮겠습니까.’하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그네는 ‘말씀은 고맙지만, 나에게는 부모가 마련해준 여비도 든든하고, 시간도 넉넉하니 염려 없습니다, 그럼!!!’하고 역시 반대방향으로 마차를 달려서 떠났습니다.

2011년 5월 17일 화요일

광주 공수부대원

24년간 정신병 앓은 '제3 공수여단원'
<특별기고> '박하사탕'을 아직 곱게 간직하고 있는 내친구 김동관
2006-05-12 09: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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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는 14일 오후 11시30분 방영되는 MBC의 '5.18 특집기획 다큐' <내친구 김동관>에 출연한 필자가 지난 3월중순부터 4월말까지 동행 촬영한 후 쓴 특별기고다.

특집 다큐의 주인공 김동관씨는 1980년 5월20일 오전 7시 제3공수여단의 일원으로 전남대에 투입돼 진압작전에 참여했다. 김씨는 그후 24년여 동안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으로 수도권에 있는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현재 수원 아주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1980년 광주에서 그가 무엇을 보고 행하고 느꼈는지를 사건 발생 26년만에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필자는 이 다큐에 출연하는 주인공 김동관씨의 대학입학 동기로서 지난 1977년이후 지금까지 30년간 주인공을 곁에서 계속 지켜본 절친한 친구 중 한명이다. 이제까지 광주시민, 민주열사 등 승자의 시각에서 5.18 광주민중항쟁이 조명되어 왔다. 하지만 진압군의 일원으로 참여한 공수부대원이 광주 진압후 얼마나 악몽같은 삶을 살아왔는가를 통해 광주항쟁의 본질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내 친구 김동관

어김없이 찬란한 5월이 또 왔다. 5월 광주민중항쟁, 그러나 그것은 아직 미완성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쟁취한 시민혁명이건만 그 속엔 텅 빈 구석이 넓기만 하다. 아직 공허함이다.

나에게는 친구가 있다. 유신정권 말기인 1977년 3월 고려대학교 정경대학에 입학한 동기생이다. 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럴 때 우리는 조국통일과 민주주의에 대해 고뇌했다. 그 이름은 김동관.

그 당시 고대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고전연구회라는 이념 서클이 있었다. 동관이와 나는 이 서클에 가입했다. 지금은 우습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칠흙같이 암울한 독재정권 시절 학생운동은 투쟁의 방법론을 놓고 치열한 내홍을 겪곤 했다. 학내 시위가 잇따랐고 비교적 온건론을 편 김동관과 나는 이듬해인 78년에 서클에 이름만 걸쳐 놓는 상태가 됐다.

◀ 대학재학 당시 친구들과 포즈를 취한 김동관. 사진 왼쪽부터 김우진, 김동관, 그리고 필자. ⓒ 황남준


그는 1979년 5월 23일 논산 훈련소에 입대했다. 운동권 경력을 가진 그는 공수부대원으로 차출돼 거여동 제3공수 여단에서 공수 훈련을 받았다.

1979년 9월 초순 서울 송파구 거여동 제3공수 면회실. 이찬영, 김우진, 나(이상 대학동창), 이원호(중학교 동창) 등 네 사람은 동관이 녀석 먹일 닭튀김과 음료수 등을 싸들고 면회를 갔다. 우리는 조금 걱정했다. 곱게 커온 녀석이 논산훈련소를 거쳐 험하기로 악명높은 공수훈련까지 잇따라 받았으니 거의 초죽음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녀석은 의기양양한 자세로 우리를 반겼다. 자신이 공수부대원의 우상인 ‘막타워의 왕’이 됐다고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막타워', 그것은 비행기 낙하훈련을 하는 모형탑을 가리킨다.

"네 번을 제일 먼저 합격하는 사람이 왕이 된다. 막타워의 왕. 그게 나라고. 그러니까 네 번... 아니 다섯 번을 뛰었다. 네번째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너무 자신만만하게 뛰어가지고··· 그래 한 번 더 올라갔어. 그래 뛰니 합격이지 뭐. 그러자 조교가 오더니 군복 다 벗어라 이거야. 그리고 막걸리 한 독을 떡 갖다놓는 거야. 한 주전자 퍼가지고 딱 먹이고.
막타왕이 (특전사) 최고의 영예야. (동료들은) 다 훈련받고 얻어맞고 뺑뺑이 돌고 있는데 막걸리 마시고 있는 거야, 혼자서. 군복 아래 위 다 벗고 군화 끈 다 끄르고, 군용 팬티만 입고 말이야."

그러던 동관이 입대 1년후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 발발하자 제3공수여단의 일원으로서 진압군으로 전남대에 투입됐다. 이것이 이 젊은 청년을 절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하는 계기가 될 줄이야.

◀ 공수부대 시절의 동관이. ⓒ김동관


달라진 동관이

5.18광주민주항쟁이 무참히 진압된 직후인 1980년 후반의 일이다. 동관이는 외박과 외출을 나와 학교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길거리에 있는 군인들과 시비가 붙어 곧잘 싸우곤 했다. 주로 동관이가 먼저 말을 붙이고 서로 주먹다짐이 오가는 식이었다. 우리는 녀석의 달라진 모습에 너무 놀라곤 했다. 군대가기 전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러던 중 1981년 여름 어느 일요일 오전. 나는 9월 입영날짜를 받아놓고 서울 도봉구 수유2동 도성암이라는 절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동관이 어머님이 잠시 집에 와서 점심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전화를 주셨다.

청파동에 있는 동관이 집으로 갔다. 동관이는 외박을 나와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후에 귀대 예정이었다. 동관이 아버님이 따로 부르셨다. "동관이가 혼자서 중얼거리고 자주 화를 내고 잠자다 괴성을 지르는 등 무언가 이상하다"는 말씀이셨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어떨까 궁금해서 불렀다는 것이다.

동관이는 나를 반겨하면서도 표정이 밝지 않았다. 대화도중 하느님과 예수님을 가끔 언급하다가 가끔 언성이 높아지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모처럼만에 갈비찜 등 푸짐한 고기음식을 많이 내주셨다. 동관이가 몸이 허해 가끔 헛소리를 하는 것 같으니까 고기를 많이 준비하셨단다.

"제대를 앞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서 그럴수도 있겠지요"라는 말로 위로의 말씀을 건넸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관이 부모님이 자신의 아들이 얼마나 걱정이 되길래 나를 부르셨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당시 정신병이라는 것은 패가망신하는 병으로 인식된 만큼 "내 아들이 그런 병에 걸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동관이 어머님은 회고하신다.

동관이는 1981년 11월5일 제대했다. 그리고 얼마 뒤인 1982년 봄 정신분열증으로 고대 근처 베드루 병원에 한달간 입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인생의 절반이 되는 24년동안 전국의 정신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병명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등 정신분열증이었다.

광주의 참극, '특전사의 무차별 학살'

도대체 1980년 5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20여년간 필자 등 몇몇 지기들에게만 파편적으로 당시 참상을 말하던 그가 비교적 건강상태가 양호해진 최근 필자가 동석한 가운데 MBC 등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다.

진압군 최후의 보루, 정예중의 정예인 제3공수여단의 일원이었지만 그는 시민군에 결코 총을 겨누지 않았다 했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광주시민과 대학생들의 원통한 고통과 죽음에 대해 강렬한 몸짓으로 상관들에 항거했다 했다. 실제로 그는 “전두환을 죽여야 한다”는 말을 81년부터 술을 한 잔 걸치면 입에 달고 살았다. 또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중 유독 악랄하게 시민군을 살해한 하사관들에 대한 적개심을 달래지 못하고 병영내에서 이들 하사관과 격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한다.

"명령은 데모대 중에서 무장한 경우에만 사격을 하게 돼 있었어. (그런데) 얘들 특전사 요원 애들은 무차별 사격했다고, 무차별로. 내가 그걸 봤어. 무차별 사격을...
'서!' 그래서 안 서면 그냥 쏴 버렸어. 무장을 했건 안했건. 도망가면 무서워서 도망가면. 그걸 쏴 죽였어. 이 특전사 애들이. 그러니, 무차별 학살이지 무차별 학살...
나는 광주 시민을 쏘는 특전사를 쏴 죽일라 그랬단 말이야. 근데 그걸 차마 죽이진 못하고..."

"전남대에서 광주 교도소로 이동했을 때 일이야. (시위대가) 탈취해 온 버스가 있었는데 문이 안열려서 문을 억지로 빵 쳐서 열었더니, 운전수가 총을 맞았는데 의자가 뒤로 딱 제껴져 있었어. 운전수가 딱 누워있는데 살아있었어. 그런데 눈에 총알을 맞았어 눈에... 심장은 뛰더라고, 만져 보니까.
버스 앞에는 전부 총알 구멍이야. 총알이 눈에 맞았는데 심장은 살아있고. 그때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몰라.
그걸 어디 묻을 수도 없고, 살아있으니까. (그때만 해도) 암매장한 게 많아, 시신 암매장 한 게...묻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해. 그래서 운전수를 나무 밑에다가, 그 전남대 산 나무 밑에다가 들어다가 놓고 왔다고 그냥. 살아있으니까. 치료해 줄 수는 없고...그후 이동했는, 그 때 참 처참하더라고.
그 때 전두환이를 죽여야 되고 노태우도 죽여야 되고 (하는) 생각이 들었어.
매일매일 (그) 생각하면 술이 안 끊어지는 거야 술이. 슬퍼서... 복수를 해야겠다고 불타는 게 아니라 슬퍼서. 그게 슬퍼서 그들의 죽음이 슬퍼서..."

◀ 광주민중항쟁을 진압 중인 공수부대원들. ⓒMBC


광주에서 성남 거여동 제3공수여단 본부로 복귀한 뒤에도 그는 광주참살에 관여한 상사들과 부단히 부딪쳤다.

"내가 술을 먹을라고 남한산성으로 보고를 하고 올라갔어. 거여동에 그 뒷산이 남한산성이었거든요. 거길 올라갔는데 늦게까지 안 오니까 상사인 박OO 중위가 탈영보고를 올렸어. 잡으러 올라와 끌려내려갔지. 두드려 맞고.
화는 났지. “박중위 나와” “내가 보고하고 올라갔는데 너 왜 탈영보고 올렸니”
박중위는 분명 부관실에 있는데 안나오더라고. 그래도 계속 “박OO이 나와" 이러니까 “이 새끼”하고 권총을 딱 들고 나오더라구.
권총을 들고 나오니까 그 때서야 아차 싶더라고. 그래서 그은 거야(왼 손목을 가리키며) 특전사는 이렇게 한 번 자해를 하거나 하면 그냥 지나가. 특전사가 워낙 험악하게 훈련을 받고 험악하게 하기 때문에 ··· 그래 이걸 그어버린 거야. 필름 끊어져서 엄청 취해가지고. 기억이 나는 게 네 바늘 꿰맸는데. 세 바늘째 따끔따끔해서 보니까 의무관 중사가 꿰매고 있더라고. 그래 가지고 일주일을 쉬었어.
중사, 저 애들하고 사이는 좋았는데, 술 먹으면 많이 싸웠어. 왜냐면 이 새끼들이 죽였거든."

탈영보고 사건후 동관이는 엄청나게 구타를 당했다고 했다. 아마 그의 병세는 탈영보고 사건과 이에 따른 자해사건, 이후 살인적인 기합과 구타 등이 잇따르면서 5.18 광주 출동후 잠재해 있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표면화된 것으로 보인다.

광주 민중항쟁에서 민간인들에게 무자비하게 총부리를 겨눈 하사관들과의 잦은 충돌, 살인적인 구타와 집단적인 따돌림, 탈영보고와 자살기도 등··· 고귀한 영혼과 여린 가슴을 지닌 그에게 역사의 질곡과 지옥같은 병영생활은 너무 버거웠던 것일까. 자책감과 분노감을 이기지 못하다 끝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끈을 놓아 버렸다.

부친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24년간 정신병원 전전

동관이는 제대후 복학과 휴학을 반복하면서 정신병원 신세를 졌다. 1980년대 그가 입원한 병원만 경희의료원, 강남 성모병원, 고대 병원, 용인정신 병원 등 즐비했다. 당연히 직장을 잡을 엄두를 낼 수도 없다. 특히 이 병에 대한 무지와 정신병에 대한 일반의 냉소적인 인식 등이 겹쳐 동관이는 정신병의 초기 치료에 실패한다.

평소 간경화병을 앓으시던 부친께서는 금지옥엽처럼 키운 아들이 몹쓸 병을 얻어 처절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고 가슴이 미어진다. 1983년 12월 홧병으로 피를 토하고 돌아가신다.

82년 봄 복학을 한 동관이는 이듬해부터 휴학, 정신병원과 복학 등을 거듭한 끝에 85년 가을 가까스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동관이가 정상적으로 학점을 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배광복(현재 통일부 근무)과 나를 비롯한 몇몇 친구의 도움과 친구 아버지인 이준범 전 고대 총장님의 배려가 있었다.

그에게도 잠시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1991년 3월 이OO씨와 결혼한 것이다. 교회에서 만나 주위의 도움으로 인연을 맺었다. 신접 살림을 신림동엔가 차렸는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모처럼만에 찾은 정신적 육체적 평온의 시절은 그러나 1993년 아들 OO의 출생 직후 음성정신병원에 장기간 입원함으로써 마감하게 된다.

신혼생활중에도 반포에 있는 용인정신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았지만 환청과 음주, 폭언과 폭행 등이 잇따르면서 상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그를 반기는 곳은 이제 정신병원뿐이었다. 결혼 11년이 다되어가는 2002년 2월 동관이는 아내와 아들의 평화를 위해 합의이혼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간의 신뢰와 애정은 아직 애뜻하다. 아니 사랑의 끈은 아직 튼튼하게 유지되고 있다. 전 부인은 아직까지 동관이의 입원비의 일정부분을 보태며 아들을 튼튼하게 키우고 있다. 동관이도 내심 자신의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염치가 없어서인지 내색을 안 하고 있다.

동관이는 요즘 이혼 당시보다 훨씬 건강상태가 양호하단다. 이혼후 국립춘천병원에서 잘 처방된 약과 자신의 강력한 재활의지 덕택이다.

◀ 아주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오는 김동관(오른쪽), 동관이 모친 김영순 여사, 그리고 전성. ⓒMBC


동관의 친구들

지난 2004년 사법고시에 늦깍이로 합격해 현재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전성 예비변호사도 동관이와 같은 서클 출신이다. 그는 학내 시위를 주도하다 감옥생활을 했고 그후 줄곧 재야와 진보 정치운동권에서 자라왔다.

그는 의협심이 강하다. 추진력도 보통이 아니다. 이찬영과 김원갑, 김우진과 나 등 주위의 친구들이 김동관의 처지에 대해 안타까워 할 때 그는 혜성처럼 나타났다.

친구들은 지난 98년 동관이의 아내 이OO씨와 머리를 맞대고 동관이에 대한 명예회복과 군복무중 공상을 입은 군인으로 국가의 보상을 받을수 있도록 법적인 해결을 추진했지만 사회적-행정적-사법적인 장벽에 가로막혀 좌절을 겪었다.

그러나 이제 전성이가 나타나 새로운 힘을 얻고 있다.

전성이는 MBC측에 자신의 방송 아이템을 제시했고 이는 김영호 PD를 만나는 계기가 됐다. 김 PD는 베트남 병사들의 전쟁 후유증에 관한 다큐를 제작하는 등 전쟁의 파괴성을 익히 잘 알고 있는 방송인이었다.

이찬영과 김원갑은 MBC가 촬영 작업이 들어갈 때 방송국과 친구들, 그리고 친구들간의 가교 역할을 자원하며 바쁜 직장생활 와중에 시간을 쪼개어 동관이를 위해 진한 우정을 발휘하고 있다. 김동관이 이처럼 많은 친구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아직까지 받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오대양같은 마음을 품고 육대주를 누비겠다”던 호연지기와 주위사람들에게 너그럽고 자상하게 대해주는 따뜻한 인간 됨됨이를 30년이 다되도록 친구들이 아직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에필로그

내 친구 동관이의 이야기는 지난 2000년 상영된 또 다른 한편의 <박하사탕>에 비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두 주인공이 걸어간 길은 정반대다.

영화속 주인공 김영호(설경구 분)가 가학적이라면 김동관은 자학적이다. 김영호가 타락했다면 김동관은 박하사탕처럼 순수하다. 김영호는 박하사탕을 짓이겨 으깨버렸지만 김동관은 박하사탕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영화속의 김영호는 5월 광주 민중항쟁 발발시 갓 자대에 배치된 신참 육군 이병으로 진압작전에 투입됐다가 칠흙같이 어두운 밤 여학생을 총기 오발 사고로 죽이게 된다. 이 사건은 김영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그는 파괴적이고 가학적인 인물로 변한다. 제대 후 경찰에 투신한 그는 시국사범을 체포해 무자비한 구타와 물고문 등을 자행하는 전형적인 악질 형사로 변한다. 94년 10년간의 형사생활을 청산하고 가구점 사장으로 화려한 변신한다. 그도 잠시. 주인공은 가정 파탄과 잇따른 사업 실패로 폐인이 된다. 99년 가을, 첫 사랑 윤순임(문소리 분)을 암으로 보낸 3일 뒤, 철길위로 올라가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마주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

그러나 내친구 동관이는 박하사탕의 주인공과 다른 길을 걷는다. 김영호처럼 어엿한 사회생활을 하며 역사에 대한 분풀이라도 해봤으면 덜 후회스럽겠건만. 바보같은 그는 그저 정신병원을 전전할 뿐이다. 그 과정은 자신의 가정과 부모 형제와의 파탄의 연속이다. 역사적 질곡을 조그마한 가슴에 묻은 채 촛불처럼 스스로를 태운다. 그리고 어느 덧 쉰 살이 다 됐다. 이제 우리 사회가 그의 고통에 답할 때다.
황남준 한국금융연구원 초빙연구원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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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9일 수요일

안산 초등학교 체벌

'엎드려뻗쳐' 등 단체기합 횡행…안산지역 초교 무슨일이?
[노컷뉴스] 2010년 06월 10일(목) 오전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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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사회부 박종관 · 김수영 기자]



다음 달에 치러지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이른바 일제고사를 앞두고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초등학교들이 ‘0교시 수업’을 실시하고 엎드려뻗쳐 등의 체벌을 가하며 성적 올리기에 몰두하는 등 교육현장이 파행으로 운영되고 있다.

◈ 0교시 수업 시간에 문제풀이하고 엎드려뻗쳐 등 체벌까지…“감옥생활 같아요”
“아침 자습시간마다 시험지를 풀어요. 다 못하면 수업이 끝나고 남아서 하고, 어쩔 때 못하면 엎드려뻗쳐나 책상 위에 올라가서 ‘앞으로 나란히’ 해요. 저희 반에서 엎드려뻗쳐 제일 오래 한 게 한 시간 반이에요” (경기도 안산 A초등학교 6학년 조모 군)
“선생님이 시험이 중요하다고, 우리 학교가 달린 문제라고 그래요. 지난번에는 우리 학교가 되게 성적이 안 나왔다고 이번에는 너희들이 꼭 잘 봐야 한다고 부담을 줘요. 학교 끝나고 학원 갔다 와서 제일 늦게 잤을 때는 새벽 한 시 반에 잔 적도 있어요. 엄마도 너무 심하다고 초등학생한테 이렇게까지 시켜야 할 필요가 있냐고 하세요” (안산 B초등학교 6학년 양모 양)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의 A초등학교. 점심시간을 맞아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로 운동장은 시끌벅적했지만, 6학년 교실은 마치 수업시간인 것처럼 조용했다.

점심을 일찍 먹은 6학년 아이들은 축구공과 야구 글러브 대신 연필을 손에 쥐고 B4 용지 크기의 시험지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적게는 두세장, 많게는 대여섯장까지 주어지는 시험지를 아침 자습시간에 다 마치지 못한 아이들은 문제 풀이에 여념이 없었다. 시험지를 풀어 오답을 확인하고 요점 정리를 공책에 베끼는 일련의 과정을 빨리 끝내지 못하면 아이들은 정규 수업 시간이 끝나고도 ‘나머지 수업’을 받아야 한다.

A초등학교 6학년 김모 군은 “아침에는 일찍 학교에 와서 아침 자습하고 5교시에는 또 선생님이 숙제를 검사한다”면서 “시험 때문에 오답노트도 시키고 평소보다 숙제를 더 많이 내주는데 선생님이 화도 내고 평소에 공부할 때 더 무섭게 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6학년 신모 양도 “선생님이 일제고사를 보면 전국에서 우리 학교가 몇 등인지 다 나온다고, 경기도에서 꼴등하면 창피하다고 계속 시킨다”며 “작년에는 아무리 늦게 남아도 3시 반에는 끝났는데 올해는 4시 반까지 나머지 수업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 지역의 다른 초등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B초등학교 역시 정규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아침 자습이라는 명목으로 ‘0교시 수업’을 실시하고, 문제풀이와 나머지 수업 등을 강요하고 있다.

B초등학교 6학년 박모 양은 “시험지를 집에서 안 가지고 오면 공책에 다 베끼게 하고 수학 공식은 공책에 다 적어야 한다”며 “문제를 안 풀면 선생님이 끝까지 남아서 시키는데 토요일에도 뭐 안 했다고 두 시까지 남아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최모 양은 “수업 마치고 학원 갔다오면 저녁 8시인데 부랴부랴 숙제를 해도 기본이 밤 11시는 된다”면서 “숙제를 안 하면 교실 뒤에 서 있거나 청소하는 봉사활동을 시키는데 마치 감옥생활 같다”고 하소연했다.

◈ 교육청까지 나서 성적 올리기에 몰두…전국적으로 일제고사 대비 파행운영
이처럼 경기도 안산시의 초등학교들이 다음달에 6학년을 대상으로 치러질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이른바 일제고사를 대비해 0교시 수업을 하고 체벌까지 가하며 점수 경쟁을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안산시교육청은 지난달 초 개념 정리와 기출 문제 등으로 구성된 5개 과목 228페이지 분량의 문제집이 담긴 CD를 일선 학교에 배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청까지 나서 조직적으로 성적 올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실시된 일제고사에서 안산시가 ‘보통학력 이상’과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 등의 평가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며 “기초 학력에 미달하는 학생들을 잘 지도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제공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제고사 성적이 전국 180개 지역교육청별로 공개돼 지역간 성적 비교와 서열화가 가능한 상황에서 교육청의 묵인 아래 일선 학교들이 도 넘은 성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경기도 안산 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등교육위원회가 소속 교사를 통해 지난 4월말부터 5월초까지 전국적으로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0교시와 방과 후 보충 수업, 교과 시간에 문제 풀이 등 교육과정의 파행 운영은 모두 30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장은숙 회장은 “정부는 일제고사를 실시하고 성적을 공개하는 것이 학력 미달 학생을 거르고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충분히 학습부진아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몇백억이 드는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다”며 “일제고사는 결국 학교와 학생, 교육청을 서로 경쟁으로 내몰아 학교 현장을 파행으로 끌고 가는 비교육적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panic@cbs.co.kr

안산 초등학교 체벌

'엎드려뻗쳐' 등 단체기합 횡행…안산지역 초교 무슨일이?
[노컷뉴스] 2010년 06월 10일(목) 오전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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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사회부 박종관 · 김수영 기자]



다음 달에 치러지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이른바 일제고사를 앞두고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초등학교들이 ‘0교시 수업’을 실시하고 엎드려뻗쳐 등의 체벌을 가하며 성적 올리기에 몰두하는 등 교육현장이 파행으로 운영되고 있다.

◈ 0교시 수업 시간에 문제풀이하고 엎드려뻗쳐 등 체벌까지…“감옥생활 같아요”
“아침 자습시간마다 시험지를 풀어요. 다 못하면 수업이 끝나고 남아서 하고, 어쩔 때 못하면 엎드려뻗쳐나 책상 위에 올라가서 ‘앞으로 나란히’ 해요. 저희 반에서 엎드려뻗쳐 제일 오래 한 게 한 시간 반이에요” (경기도 안산 A초등학교 6학년 조모 군)
“선생님이 시험이 중요하다고, 우리 학교가 달린 문제라고 그래요. 지난번에는 우리 학교가 되게 성적이 안 나왔다고 이번에는 너희들이 꼭 잘 봐야 한다고 부담을 줘요. 학교 끝나고 학원 갔다 와서 제일 늦게 잤을 때는 새벽 한 시 반에 잔 적도 있어요. 엄마도 너무 심하다고 초등학생한테 이렇게까지 시켜야 할 필요가 있냐고 하세요” (안산 B초등학교 6학년 양모 양)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의 A초등학교. 점심시간을 맞아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로 운동장은 시끌벅적했지만, 6학년 교실은 마치 수업시간인 것처럼 조용했다.

점심을 일찍 먹은 6학년 아이들은 축구공과 야구 글러브 대신 연필을 손에 쥐고 B4 용지 크기의 시험지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적게는 두세장, 많게는 대여섯장까지 주어지는 시험지를 아침 자습시간에 다 마치지 못한 아이들은 문제 풀이에 여념이 없었다. 시험지를 풀어 오답을 확인하고 요점 정리를 공책에 베끼는 일련의 과정을 빨리 끝내지 못하면 아이들은 정규 수업 시간이 끝나고도 ‘나머지 수업’을 받아야 한다.

A초등학교 6학년 김모 군은 “아침에는 일찍 학교에 와서 아침 자습하고 5교시에는 또 선생님이 숙제를 검사한다”면서 “시험 때문에 오답노트도 시키고 평소보다 숙제를 더 많이 내주는데 선생님이 화도 내고 평소에 공부할 때 더 무섭게 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6학년 신모 양도 “선생님이 일제고사를 보면 전국에서 우리 학교가 몇 등인지 다 나온다고, 경기도에서 꼴등하면 창피하다고 계속 시킨다”며 “작년에는 아무리 늦게 남아도 3시 반에는 끝났는데 올해는 4시 반까지 나머지 수업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 지역의 다른 초등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B초등학교 역시 정규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아침 자습이라는 명목으로 ‘0교시 수업’을 실시하고, 문제풀이와 나머지 수업 등을 강요하고 있다.

B초등학교 6학년 박모 양은 “시험지를 집에서 안 가지고 오면 공책에 다 베끼게 하고 수학 공식은 공책에 다 적어야 한다”며 “문제를 안 풀면 선생님이 끝까지 남아서 시키는데 토요일에도 뭐 안 했다고 두 시까지 남아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최모 양은 “수업 마치고 학원 갔다오면 저녁 8시인데 부랴부랴 숙제를 해도 기본이 밤 11시는 된다”면서 “숙제를 안 하면 교실 뒤에 서 있거나 청소하는 봉사활동을 시키는데 마치 감옥생활 같다”고 하소연했다.

◈ 교육청까지 나서 성적 올리기에 몰두…전국적으로 일제고사 대비 파행운영
이처럼 경기도 안산시의 초등학교들이 다음달에 6학년을 대상으로 치러질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이른바 일제고사를 대비해 0교시 수업을 하고 체벌까지 가하며 점수 경쟁을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안산시교육청은 지난달 초 개념 정리와 기출 문제 등으로 구성된 5개 과목 228페이지 분량의 문제집이 담긴 CD를 일선 학교에 배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청까지 나서 조직적으로 성적 올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실시된 일제고사에서 안산시가 ‘보통학력 이상’과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 등의 평가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며 “기초 학력에 미달하는 학생들을 잘 지도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제공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제고사 성적이 전국 180개 지역교육청별로 공개돼 지역간 성적 비교와 서열화가 가능한 상황에서 교육청의 묵인 아래 일선 학교들이 도 넘은 성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경기도 안산 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등교육위원회가 소속 교사를 통해 지난 4월말부터 5월초까지 전국적으로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0교시와 방과 후 보충 수업, 교과 시간에 문제 풀이 등 교육과정의 파행 운영은 모두 30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장은숙 회장은 “정부는 일제고사를 실시하고 성적을 공개하는 것이 학력 미달 학생을 거르고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충분히 학습부진아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몇백억이 드는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다”며 “일제고사는 결국 학교와 학생, 교육청을 서로 경쟁으로 내몰아 학교 현장을 파행으로 끌고 가는 비교육적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panic@cbs.co.kr

2010년 6월 4일 금요일

대한민국의 괴이한 민주주의

2007년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국개론이라는 얘기가 떠돌았었다.
풀어쓰기에는 좀 민망한 '국민이 개새끼'라는 얘기인데, 이를테면 가난한 사람이 절대 다수인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오직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이 분명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에게 투표하는 가난한 국민들이 제 목을 조르는 바보들이라는 욕이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고, 대선 후의 허탈감이랄까 분노에 빠졌을 당시에 진보나 민주(?) 성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상당히 호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상당히 위험하고 혐오감이 들 수 있는 얘기인데도, 최소한 그 당시에는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국민들을 옹호(?)하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이야 한풀 꺾였지만, 2010년 현재도 정치 얘기를 할 때 간간히 거론되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좀 웃기는 사실은, 그 국개론을 극렬히 주장하는 일군의 사람들 중에 이명박의 상대 후보였던 정동영에 대해 무효표를 찍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의 낙선을 위해 정동영을 찍었던 사람들도 이 무효표를 던진 사람들의 '진정성'에 깊이 공감할 뿐, 이명박을 도왔다고 문제제기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결국 자신들은 너무 싫어서 찍지 않았지만, 그 사람을 당선시키지 못한 국민들은 개새끼라는 얘기다.
좀 이상하지만, 여기까지는 논리적으로는 납득할 수 있다.
요컨대 이명박이 당선된 이유는 정동영을 찍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명박을 많이 찍었기 때문이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자기들조차 찍기에 민망한 후보를 내고나서 그 사람이 당선안됐다고 국민들 탓을 하는 것은 상식도 예의도 아니라고 본다.

** 약간 논지에서 벗어나는 얘긴데, 이 국개론을 극렬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두해 전에 있었던 김근태의 국민 노망론인가 하는 비슷한 류의 얘기를 극렬히 비판한 바가 있다. **

다행히 2010년에 치러진 지방선거가 끝난 후에는 국개론 같은 저급한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대체로 야권의 승리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국민들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특히 최대 격전지였던 서울에서 이익투표(계급투표라고 하기는 좀 뭐한) 양상이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에 결과를 떠나 개같은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더 손쉽게 시장 선거 낙선의 책임을 떠넘길 상대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
그 상대는 바로 진보신당의 노회찬과 그 지지자들로, 요컨대 알량한 진보의 가치를 지킨답시고 출마해서 표를 갈라먹었기 때문에 한명숙이 낙선되었다는 거다. 그래서 진보신당의 출마와 선거 완주는 오세훈 당선에 일조한 것이고 한나라당의 2중대이며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얘기다.

** 이것을 제대로 얘기하려면 20년 넘게 지속된 케케묵은 비판적 지지론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그것까지 정리할 능력은 안되고, 간단히 상식 선에서 짚어보고 싶은 게 있다.**

사실 노회찬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노회찬-진보신당의 노선과 한명숙-민주당의 노선이 전혀 다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명분은 반MB라는 시대적 사명을 받들어 좋건 싫건 한명숙에게 표를 밀어주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비난하는 와중에도 정동영을 찍지 않아 MB를 당선시키는데 일조했던 한나라당 2중대이자 민주주의의 적인 자신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다. 자기 당 후보인 정동영을 차마 찍지 못한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고민한 결과이고, 원래 다른 길을 가던 노회찬이 원래 가던 길을 간 것은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얘기다.

이쯤 되면 이들이 얘기하는 민주주의가 뭔지 뜨악해질 수밖에 없다.

노무현도 유시민도 얘기했듯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열우당(그 후손인 국참당)의 지향점과 비전은 크게 차이가 없다. 비정규직 문제나 FTA 문제, 파병 문제 등 굵직한 사안에 대해 이들의 비전이나 정치적 행보는 큰 차이가 없었다.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범야권내 개혁 그룹으로 불리는 노무현 유시민 자신의 평가이니 이렇게 말하는 게 문제되지 않으리라 본다.

그런데도 이들이 반MB를 이토록 중요한 가치로, MB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으며 이것을 막아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아마도 MB가 [단지 대선에서 많은 득표를 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국민의 다수로 규정하고 온갖 반대를 정면돌파하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MB를 막기 위해 이들이 내건 것은 [단지 선거에서 확보하고 있는 표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스스로를 국민의 염원으로 규정하고 전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다른 세력 더러 막무가내로 자신을 지지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면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한다.

이것을 과연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낙선의 이유를 분석해 보자.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그리고 기타 범여권 잡당의 정당 지지를 합치면 46.3% 정도 된다.
그리고 오세훈이 얻은 표는 47.4%.
자유선진당의 고소영 남편이 2%를 얻어 여권을 분열시켰으므로 실제로 오세훈이 범여권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외에도 3% 정도의 표를 더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표 수로는 정당지지 합산 190만표 정도, 오세훈 208만 표를 얻었다.

민주당과 국참당, 민노당의 정당 지지를 모두 합치면 49.7. 거의 50%에 육박하는 수치가 된다.
그리고 한명숙이 얻은 표는 46.8%
표 수로는 3당의 정당지지 합 217만표, 한명숙 206만표 득표.
한명숙은 반MB연대를 주장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11만표 정도를 득표하지 못했다.

이쯤이면 진보신당을 끌어넣지 않아도 패배의 이유를 알만 하다.
한명숙 후보는 자기편이라고 모여있는 정당지지로 모여있는 표조차 자신의 표로 흡수하지 못했고, 그 표를 오세훈이 가져간 것이다.
참고로 진보신당의 경우도 정당지지 표가 노회찬 득표보다 2만표 정도 많다. 진보신당을 지지했지만 시장은 한명숙에게 찍은 표가 2만 정도 더 있다는 얘기. 따라서 한명숙이 못먹고 흘린 표는 11만표가 아니라 13만표 쯤 되나보다.

** 사실 투표수 분석하고 누가 몇표를 얻었네 어디서 뭘 못얻었네 하는 것은 이 논란에서 무의미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출마를 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투표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권리이다. 적어도 민주주의에 아주 개차반인 이명박조차 막을 수 없는 권리에 속한다. 자칭 민주 운운하면서 이것을 막겠다는 것들이 정신이 이상한 놈들이다. 수치는 다만 이번 선거에서 이렇게 되었으니 보고 좀 생각하라고 참고로 제시한 것이고, 설령 노회찬이 한명숙 표를 강제로 뺏어와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한명숙이 낙선했다고 해도 그것이 노회찬을 비난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

왜 패배했냐고?
득표를 못했으니 패배했지. 그것이 답이다. 선거에 지는 이유가 다른 게 있나?
굳이 외부에서 이유를 찾자면 오세훈이 득표를 많이 했기 때문에 진 것이다. 이건 강남 3구 구민들에게 가서 따져라. 다만 적어도 그 구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냉철히 계산해서 투표한 것이므로 국개는 아니다.

인터넷에서 이런 사람도 봤다.
정당표가 비등비등했고, 오세훈이 시장 프리미엄을 받아 더 많이 득표한 거란다. 시장 프리미엄을 받을 것은 기정 사실이므로, 자기표 간수를 못했다는 비판은 성립되지 않고 결국 노회찬이 갈라먹어서 떨어졌다고 .....
이 사람의 지능은 머리나쁜 국개파 중에서도 특히 나빴나보다.
MB 심판 국민 염원 열망론의 근거는 MB와 오세훈이 대통령질 시장질을 정말 너무나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바꾸자는 열망이 용솟음친다는 얘기 아니었나? 그런 오세훈이 현직 시장 잘했다고 주는 프리미엄을 받는게 기정 사실?? ㅎㅎ

그리고 근본적으로 국민들이 MB와 오세훈을 심판하는 열망이 막 주체할 수 없이 솟구쳐 오르는데, 왜 노회찬의 출마와 완주가 문제가 되는가? 그 열망을 그러모아 자기 표로 조직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노회찬이 출마하면 한명숙이 그 시민들의 마음을 모으는데 무슨 장애가 생기나? 노회찬더러 사퇴하라 압박하는 명분이 시민들의 열망이 자기 쪽에 있다는거 였는데.
만약 시민들의 마음이 노회찬한테 쏠려 한명숙이 그 표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면 한명숙 스스로 사퇴하면 되는 일이다. 그것이 자기들이 말하는 대의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상식적으로 보든 결과로 보든 나는 노회찬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머리 나쁘고, 최소한의 예의도 못갖춘, 반민주적인 민주투사라니. ...
국민들을 개새끼로 보면서 그 국민들의 염원이라며 제갈길 가고 있는 엄한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정작 자기들 표조차 간수를 못해서 떨어져 놓고 나서 남 탓을 하고 있다..
이게 지금 한국 사회의 반MB를 통해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작자들의 행태다.
(물론, 자칭 민주개혁 진영의 지지자들이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 중 점잖은 사람들은 이런 극렬 빠들을 곤란해 하겠지.)

문제는 이런 천박한 민주주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야권 개혁파라는, 그나마 보수 야당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라는 사람들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희망이요 진리요 시대적 요구를 껴안고 걸어가는 고독한 순교자쯤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 괴악한 민주주의자들의 뻘짓이 갈수록 도를 넘는 것 같은데, 너무 치달려 곧 무너지기 직전의 상황은 아닐까 하면서 희망을 가져본다.


만약 오세훈이 졌다면 고소영 남편에게 이정도 수준의 린치가 가해질까? 개인적으로 이것이 참 궁금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칭 민주주의자들의 민주적 문화가 재벌독재당의 그것만도 못하다는 얘기가 되는데, 참 웃기는 일이다.

2010년 6월 3일 목요일

[2010/6/2 지방선거 마지막 유세] 노회찬 후보 호소문

[서울시민들께 드리는 노회찬 후보 호소문]



840만원의 권리, ‘복지혁명’을 완수할 유일한 후보
노회찬에게 투자해주십시오!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이제 하루만 지나면 길고 길었던 선거운동이 끝이 납니다. 그동안 저 노회찬을 비롯한 많은 후보들의 선거유세를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던 선거였습니다. 그러나, 한쪽은 선거를 북풍으로 돌파하려 하고, 또 한쪽은 무조건적인 반MB와 전직 대통령 서거의 추모바람으로 만들어가는 상황 속에서 제대로 된 정책선거는 불가능해져버렸습니다. 누구를 더 좋아하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더 싫어하느냐 만이 강요된 선거였습니다.


진보신당 노회찬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정책선거를 하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저의 노력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내일 선거에서 시민여러분들이 저의 진심을 반드시 선택해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서울시민 여러분.


누구나 알고 계시듯이 지난 4년간 오세훈 시장은 서울을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바꿔내지 못했습니다. 오세훈 후보가 자랑하는 통계는 오세훈 후보에 의해서 취사선택된 통계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삶의 질은 세계 81위로서 살기 버거운 곳 서울, 세계 최저 출산율로 아이 하나 낳고 키우기 어려운 서울, 노동자 한 사람이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려면 평균 2-30년은 벌어야 하는 서울, 이것이 오세훈 시장이 재임 기간 만들었거나, 방치해버린 서울입니다. 오세훈 후보 본인은 수많은 일을 했다고 자화자찬 하지만 그가 자랑하는 소위 ‘업적’으로 인해 혜택을 본 사람은 거의 없는 도시가 서울입니다. 도대체 오세훈 시장은 어느 도시의 시장을 한 것입니까. 그런 점에서 오세훈 시장 4년의 서울시 행정을 이번에는 반드시 심판해야 합니다.


그러나, 시민여러분. 이러한 오세훈 서울시정 심판의 적임자는 누구입니까. 저 노회찬은 지금 모든 야당들이 공통으로 내놓고 있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수년 전부터 추진해 왔습니다. 또한, 서울시민들의 아이 키우는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무상보육 역시 일관되게 주장해 왔습니다. 노회찬과 진보세력이 주장해온 공약들은 이제 진보신당의 주장을 넘어 모든 야당의 주장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보편공약을 반대하고 있는 한나라당 후보와, 전 정권 시절에는 반대하다가 선거 때가 되어서야 급하게 이러한 공약을 수용한 민주당 후보, 그리고 묵묵히 이러한 복지혁명을 주장해 온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 중 과연 누가 복지서울의 시장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진보신당 노회찬이야말로 서울의 복지혁명을 가져올 유일한 후보입니다.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서울시의 1년 예산이 21조원입니다. 여기에 4년을 곱하고 1천만 서울시민으로 나누면 840만원이 됩니다. 내일 선거에서 여러분이 행사하는 한 표는 돈으로 환산하면 840만원 여러분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권리를 단지 서울시에 분칠하고, 본인 치적 홍보하는 후보에 행사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복지서울에 대한 명확한 비전 없이 반MB만을 강조하는 후보에 행사하시겠습니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복지혁명을 끝까지 완수할 유일한 후보, 진보신당 노회찬에게 행사하시겠습니까?


서울시민 여러분. 내일 선거에서 진보신당과 노회찬을 찍는 표는 다른 어떤 후보를 찍는 표보다도 값진 표입니다. 여러분의 곁에 복지혁명이 훨씬 더 성큼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840만원을 내시고도 복지혁명을 못 받아내신다면 그것은 서울시민들의 패배입니다. 서울시장 후보 저 노회찬을 비롯해 지역구의 후보, 그리고 정당투표까지 모두 행운의 기호7번을 부탁드립니다. 복지혁명으로 반드시 화답하고, 여러분에게 진정한 선거승리를 안겨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6월 1일
진보신당 서울시장후보 노회찬